과징금·교육세·머니무브…은행권 위기감 쌓이는데 '은행연합회'가 안 보인다
입력 2026.02.09 07:00
    조용병 취임 기대감 컸지만…더 조용해진 연합회
    ELS 이슈서 연합회보다 노조 목소리가 더 커
    증권사에 밀리는 퇴직연금, ETF 실시간 거래 논의도 제자리
    법정단체 아닌 구조적 한계? 각자도생 가는 은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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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은행권을 둘러싼 현안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지만, 정작 업계를 대변해야 할 은행연합회의 존재감은 희미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이 첫 금융지주 회장 출신이라는 기대를 안고 취임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오히려 조용하다'는 분위기다. 이러는 사이 각종 과징금부터 교육세 인상, 머니무브에 따른 자금 이탈 우려까지 커지며 은행권 전반의 위기감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 정도면 업계 차원 메시지가 나와야 하는데 조용하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특히 ELS 과징금의 경우 금융소비자보호법 적용 첫 사례라는 상징성이 크고, 과징금 규모도 수조원대에 달할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은행권 공동 입장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대비가 더 뚜렷하다는 평가도 있다. 과거 은행연합회는 정책 당국의 제도 설계가 과도하거나 현장과 괴리가 크다고 판단될 경우, 업계를 대표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도 해 왔다. 규제 산업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은행권의 입'을 자임했던 셈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연합회가 불합리한 규제나 제도 등에 대해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역할이 사라진 느낌"이라며 "연합회가 앞장서서 의견을 조율하고, 관의 권한 행사와 관련해 은행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023년 말 첫 금융지주 회장 출신으로 선출된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에도 이런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금융권 사정에 밝은 인물이 연합회를 이끌게 된 만큼, 최소한 업계의 논리를 전달하는 역할은 강화될 것이란 기대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조심스러워졌다는 평가가 많다. 금융당국의 기조를 의식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여러 현안에 은행연합회가 은행권 의견을 모아 정부당국에 전달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전달'에 그쳤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교육세율 인상과 관련해 은행권이 은행연합회 중심으로 개정법률안 관련 의견을 취합해 기재부에 제출했지만, 실제 관련 법 개정 흐름을 바꾸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ELS 과징금 논의 과정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드러난다. 은행권이 제도적 쟁점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금융노조가 금소법 첫 적용 사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작 은행을 대표해야 할 조직보다 노조가 더 앞에 서 있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특히 퇴직연금 이슈에서 은행연합회가 분발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증시가 활황을 보이며 퇴직연금 상장지수펀드(ETF) 거래가 수월한 증권사로 대거 이탈하고 있는 까닭이다. 은행에선 ETF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해 경쟁력이 뒤쳐진다는 지적이다. 

      이는 금융당국의 2021년 규정 해석에 따른 것이다. 금융위는 당시 '업종별 규제'를 이유로 실시간 거래를 불허했다. 이후 4년간 퇴직연금 시장은 295조원에서 500조원 규모로 급성장하고, '실물 이전' 등 대규모 제도 개편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 해당 해석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퇴직연금 계좌 ETF 실시간 거래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며 "은행권에서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할 이슈지만, 현재도 개별 은행의 산발적 문의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은행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은행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인 데다 공공성을 띠고 있어 정책 당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기 어렵고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서 공개적인 문제 제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칫 '이익 집단'으로 비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부담도 크다.

      은행연합회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유를 금융투자협회가 자본시장법에 설립 근거를 두고 있는 반면, 은행연합회는 특정 금융법에 의해 세워진 기관이 아닌 비영리 사단법인이라는 점에서 찾기도 한다. 업권 전체 현안에 대해 공식적인 정책 파트너로 나서기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이 민간 기업이지만 규제 산업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무시할 수 없다"라며 "은행 산업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가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한 다리 건너 은행연합회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는 대신 개별 은행 임원이 직접 당국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밝히거나, 법률적 쟁점의 경우 로펌을 창구로 비공식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공통 현안임에도 '각자도생' 방식의 대응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그러나 머니무브로 인한 자금 이탈, 쏟아지는 규제 속에서 은행권을 둘러싼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개별 은행이 감당하기 어려운 업권 전체의 위기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은행연합회장의 리더십과 연합회 전문성이 발휘돼야 할 시점이란 목소리도 공공연하게 제기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그간 은행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기 때문에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은행 이익을 대변하는 데 상당히 소극적"이라며 "최근엔 은행을 대변하기보다 정책 시행 시 관의 의견을 은행에 전달하는 역할이 더 큰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