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는 '레코드 게임', DCM은 '금리 부담'…전통 IB 체감은 제한적
대형 딜도 타이밍 저울질…중복상장 제도 변수에 멈춘 ECM 시장
회수 기대·운용 압력 맞물려…PI·모험자본은 자금 집행 속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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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연초부터 가파르게 오르며 거래대금까지 급증하자 증권업 전반이 수혜를 입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브로커리지와 자산관리(WM), 트레이딩 등 리테일과 시장 부문은 거래 증가와 자금 유입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가 빠르게 반영되는 분위기다.
다만 증권사 내부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불장 효과'가 모든 부서에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통적인 기업금융(IB)은 제도와 높은 금리라는 구조적 변수에 여전히 영향을 받는 반면, 자기자본 투자(PI)와 모험자본 부문은 오히려 집행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움직이며 뚜렷한 온도차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주식 일평균 거래대금(넥스트레이드 포함)은 62조원을 넘어서며 지난해 같은 달의 3.4배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지난해 전년 대비 호실적을 낸 데 이어, 올해에도 추가적인 실적 상승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성과급에 대한 임직원들의 눈높이도 크게 높아진 상황이다.
이처럼 같은 증시 호황 국면에서도 증권사 내부에서는 부문별 체감이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리테일과 트레이딩은 거래 증가의 직접 수혜를 받고, 자기자본 투자 부문은 회수 기대와 운용 압력 속에서 속도를 내는 반면, ECM·DCM 등 전통 IB는 제도와 금리라는 변수에 여전히 발이 묶여 있다는 것이다.
리테일 및 트레이딩 부문은 확실한 성장세다. 거래대금 확대는 위탁매매 수수료 증가로 직결되고, 주가 상승은 신용공여와 WM 자금 유입 기대를 키우고 있다. 대형 증권사 주요 거점 지점에는 지난달 중순 이후 매일 수백억원의 신규 자금이 유입되며 프라이빗뱅커(PB) 등 담당자들의 업무량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트레이딩 역시 증권사에 자금이 쏠리며 일손이 부족해진 상황이다. 지난해 주가연계증권(ELS) 발행 규모는 69조원을 돌파하며 2024년 대비 25% 증가했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가 300조원을 돌파하며 유동성공급자(LP) 등 관련 업무 수수료 수익 역시 크게 늘고 있다.
반면 기업금융 현장에서는 지수 상승이 곧바로 딜 증가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특히 ECM·IPO 부문은 겉으로 보이는 시장 분위기와 실제 체감 간 괴리가 크다는 평가다. 지수 상승으로 상장 밸류에이션 부담이 일부 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딜 성사 여부는 여전히 제도 변수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중복상장 논란과 주주보호 강화 흐름 등 정책 방향이 상장 시점을 가르는 핵심 요인으로 자리 잡으면서, 단순한 시장 호황만으로는 기업들의 상장 의사결정이 빨라지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IPO 시장 구조 자체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형 딜일수록 소수 하우스 중심으로 숏리스트가 짜이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후발 주자나 중소형 증권사는 시장 호황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중형 증권사 IPO부서 관계자는 "지수가 오르면 IPO 환경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생기지만, 실제 수임은 결국 트랙레코드가 좌우한다"며 "대형 딜은 정해진 하우스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라 시장이 좋아도 체감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DCM 부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발행 수요는 이어지고 있지만 금리 레벨이 높아진 상황에서 발행사들이 조달 시점을 조절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주관사 간 수수료 경쟁까지 겹치며 수익성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일부 대형 발행사들조차 회사채 발행 일정을 조율하는 모습이 이어지면서 시장 분위기를 탐색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 담당 임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 금리에서 굳이 서둘러 발행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요는 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타이밍을 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증시 호황이 채권시장에는 오히려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시각도 있다.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채권 투자 수요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고, 이는 발행 여건을 더 까다롭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통 IB 영역에서는 "시장 분위기는 뜨겁지만 실제 체감은 생각보다 차갑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기자본 투자(PI)와 모험자본 부문은 오히려 자금 집행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증시 상승이 상장 밸류 눈높이를 끌어올리면서 향후 회수(엑시트) 가시성을 높이고, 동시에 발행어음 등으로 운용해야 할 자금이 늘면서 투자 집행을 미루기보다 타이밍을 선점하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모험자본 확대를 강조하는 정책 기조까지 맞물리며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속도전'에 가까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요즘은 시장이 좋다 보니 나중에 상장으로 회수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겨 투자 판단이 예전보다 빨라지는 측면이 있다"며 "자금이 들어오는 구조에서는 놀리기보다는 먼저 집행하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 IB는 제도와 금리 영향을 크게 받지만, 자기자본 투자는 오히려 이런 장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성격이 강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