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공급 둘러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HBM 경쟁 2막
입력 2026.02.18 07:00
    보수적인 SK하이닉스, 공세 퍼붓는 삼성전자 구도
    HBM4 요구성능 문제로 로직 역량도 핵심 변수로
    삼성전자 자체 파운드리 효과 기대감도 커지지만
    양사 HBM 경쟁우위 둘러싼 갑론을박 이어질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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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엔비디아는 올 하반기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인 '베라 루빈'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칩에는 처음으로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가 탑재되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물량 대부분을 책임질 전망이다. 

      HBM4 첫 공급이라는 상징성 만큼이나 양사 추격전, 주도권 변화에 대한 시장 관심이 지대하다. 업계에선 벌써 수개월째 양사 경쟁우위를 따져보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같은 날 진행한 실적 발표회에서 "HBM4는 고객사 일정대로 양산을 진행하고 있다"라는 동일한 메시지를 내놨다. 여기서 '고객사'는 엔비디아고 '일정'은 하반기 출시를 앞둔 베라 루빈 공급 계획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양사 모두 기술력과 양산 능력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투자업계에서도 결국 양사가 HBM4에서부터 시장을 양분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는 있다. 그러나 양사 모두 차질 없이 엔비디아에 HBM4를 공급할 수 있느냐, 결과적으로 누가 더 높은 점유율·수익성을 확보할 것이냐를 두고선 좀처럼 의견이 모이지 않는다. 당장 누가 HBM4 최초 공급 타이틀을 쥐게 될 것이냐를 두고도 혼선이 가득하다. 

      일단 양사는 동일 전장에 각기 다른 무기를 쥐고 참전했다. SK하이닉스는 직전 세대인 HBM3e 때와 마찬가지로 1b D램 공정 기반으로 HBM4를 제작하되, 로직(Logic)에선 TSMC의 12나노(nm) 공정과 협업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HBM에는 재설계를 마친 1c 공정을, 로직에는 자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의 4nm 공정을 활용한다. 삼성전자가 각각 한 단계 더 미세화한 공정을, 자체 역량만으로 적용하는 구도로 요약된다. 

      통상 반도체는 더 미세한 공정으로 찍어낼수록 ▲성능은 개선되고 ▲8단, 12단 형태로 높이 쌓아올리기 용이해지는 데다 ▲중장기 원가 구조가 개선되는 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수율을 확보하기 힘들어 초기 원가 구조가 치솟는 등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기술적 완성도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기껏 비싼 최신 공정을 투입하고도 고객사 요구 성능을 맞추지 못하는 리스크도 있다. 이 때문에 1b냐 1c냐는 경영 판단의 문제일 뿐 그 자체로 우열을 가릴 문제는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로선 HBM4까지는 이미 안정화한 1b 기반으로도 충분히 소화가 가능하다 판단했고, 무엇보다 HBM은 고객 신뢰가 중요해서 섣불리 최신 공정을 투입하기 꺼려지는 측면이 있다"라며 "이 때문에 추격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압도적 생산능력, 자본력 기반으로 1c로 도약하는 방식의 승부수를 띄울 수 있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HBM4 세대까지는 원가 구조에서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를 뛰어넘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다소 우세하다. 최신 공정일수록 비용이 비싸지는 문제도 있지만, 수율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전까지는 생산성이 원가 구조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이런 부담을 인지한 상태에서 1c 기반 승부에 뛰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로직 영역에서는 정반대 분석이 나온다. 로직에서는 더 미세한 공정을 적용하는 게 확연한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이다. 

      HBM에서 로직은 메모리와 가속기(GPU) 사이에서 오가는 신호를 제어, 관리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가리키는데, HBM 최하단에 위치하기 때문에 통상 베이스다이로 불린다. D램을 위로 쌓아올려 집적도를 높일수록 데이터가 오가는 고속도로의 개수와 폭이 크게 늘어나는데, 이제 교통 관제소 역할을 하는 로직 역시 더 똑똑하고 영민해져야 한다는 구도로 비유된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HBM4에서부터 직전 세대 보다 50% 안팎 빠른 11Gbps 이상 신호 속도를 요구하고 있다. 고객사들이 도로 폭만 넓히지 말고 오가는 속도까지 최대한 끌어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만큼 로직의 역할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성능 경쟁의 무게 중심이 순수 D램 영역에서 로직으로 이동하는 만큼 SK하이닉스 부담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비메모리인 만큼 사업 영역 자체가 달라 내재화 한계는 큰데 TSMC 미세 공정을 빌려쓰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요구 성능이 게속 올라간다고 가정하면 갈수록 TSMC의 더 비싼 공정에 기대야 하니, 결과적으로 HBM 마진풀을 점점 양보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삼성전자는 최신 1c 공정을 투입하는 부담을 자체 파운드리로 상쇄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실적 발표회에서 일부 가시 있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고객사 요구성능이 올라가더라도 재설계 없이 샘플을 공급하고 순조롭게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경쟁사들의 로직 영역 약점으로 인한 대역폭·신호속도 문제를 간접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있다. 반도체 업계 내에서도 지난 연말 이후로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로부터 수차례 수정(리비전) 요청을 받은 것으로 파악 중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파운드리 선단공정을 활용한다 해서 곧바로 원가 우위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1c 공정과 마찬가지로 기술적 난도도 높고 수율 안정화에 시간이 필요한 데다, 내부 생산이 비용 구조를 높일 가능성도 거론되기 때문이다. 당분간 양사가 매 분기 실적 발표에 나설 때마다 양사 경쟁우위를 둘러싼 논쟁 역시 계속될 거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