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PE들, 한국 오피스서 '의자게임' 판 벌였다…칼라일·EQT 등 인사 후폭풍 확산
입력 2026.02.20 07:00
    정익수 칼라일 합류, EQT 서상준 퇴사…본사차원의 '자원배분' 신호탄?
    한국이 이제 '전초기지" 전락?…“좌석은 늘지 않는다, 사람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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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글로벌 사모펀드(PE)들이 자사 한국 오피스에서 이른바 ‘의자뺏기 게임' (Musical chairs)을 시작한 모습이다. 최근 굵직한 글로벌 하우스에서 파트너급 영입과 퇴사가 잇따르면서 벌어진 일이다. 단순 인사 이슈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글로벌 본사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히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흐름을 두고 “본사가 한국의 위상을 ‘확장’에서 ‘조정’으로 재계산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자금모집이 둔화되고 투자대상도 찾기 어려워진 국면에서 글로벌 자원 배분을 보수적으로 바뀌는 과정이 '한국 오피스 인사'에서 먼저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칼라일 그룹 한국 오피스다. 

      최근 칼라일은 새로운 MD(Managing Director)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출신 정익수 부대표를 영입했다. 그는 어피너티 재직 시절 ▲현대카드 지분 투자 ▲SK렌터카 경영권 인수 등 굵직한 거래를 수행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인물이다. 금융·모빌리티 등 구조화된 딜 경험을 보유한 점이 강점으로 평가된다.

      2010년 어피너티에 합류해 2022년 부대표에서 파트너로 승진했다. 2023년 민병철 총괄대표 중심의 사실상 ‘1인 체제’가 굳어졌고, 이에 따라 정 MD의 퇴사 가능성도 업계에서 꾸준히 거론돼 왔다. 정 MD는 지난해 어피너티를 떠난 이후 차기 행선지를 두고 고심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표면상 정MD의 영입은 '전력 보강'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글로벌 PE 구조를 감안하면 이렇게만 보긴 어렵다는 평가다. 이미 칼라일 코리아부문에서는 김종윤(존킴) 대표를 포함, 다수의 MD가 있는 상황인데, 더 젊은 MD가 충원됐다. 

      이번 인사는 칼라일 코리아 팀이 아닌, 칼라일 글로벌 차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즉 영입이 진행되고 언론에 보도되는 동안에도 칼라일 코리아 팀은 배제됐다. 심지어 칼라일 코리아 팀 대다수는 정MD의 영입 사실조차 뒤늦게 인지했고, 이로 인해 적잖은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어쨌든 이번 인사를 둘러싼 의사결정 구조는 통상적인 로컬 주도 방식과는 달랐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확장기엔 사람을 늘리고, 수축기엔 사람을 겹친다”며 “좌석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바뀌고 배치가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의자뺏기 게임라는 의미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 계열 투자그룹인 EQT파트너스에선 그간 한국 인프라 부문을 이끌던 서상준 대표가 회사를 떠났다. EQT는 폐기물 업체인 KJ 환경 등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조 단위 인프라 거래를 성사 시키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현재는 PE 부문을 맡고 있는 연다예 대표 체제로 무게가 이동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를 두고 “한국팀에 대표가 두 명일 필요가 있느냐는 본사의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대개 글로벌 PE하우스에서 아시아 비중은 통상 30~40%, 한국 배분은 그중 10~15% 안팎으로 거론된다. 이때 펀딩이 둔화되면 본사는 ‘확장’ 대신 ‘선택지 관리’에 들어간다. 이때 나타나는 특징이 시니어 포지션의 중첩이다. 즉 MD급이 겹쳐지는 구조는 '전력보강'이나 '증원'이라기보다 '내부 경쟁 구도'로 해석된다. 본사 투자위원회(IC)와의 연결 고리를 누가 더 공고히 확보하느냐에 따라 딜 승인 속도와 배분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PE 업계 관계자는 “결국 본사 자원 배분이 줄어드는 국면에서 IC를 설득할 수 있는 인물만 남는다”며 “칼라일로 옮긴 정MD 역시 어떻게 보면 기존 멤버들과 경쟁하면서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MD자리의 희소성(?)이 결국 내부자 이탈로 이어진 사례는 흔한 편이다. 베인캐피탈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성과를 낸 이정우 대표가 결국 창업에 나서며 이탈했고 현재 김동욱 대표 중심의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윗선이 정리됐으니 내부 결속을 다지는 분위기다. 작년 말부터는 김동욱 대표 체제 안착을 위해 인력 보강에 나서고 있는데 대부분 '실무급' 직원이다.

      CVC캐피탈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등에서도 인력 충원이 이뤄지고 있다. 창업주인 박영택 회장부터 이철주 부회장과 이상훈 대표, 정익수 부대표까지 떠나고 'KY탕 회장-민병철 대표' 체제가 마련된 어피너티는 이제 실무진 영입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CVC캐피탈의 경우, 아시아 비중을 유지하는 전략 속에서 한국 조직 변화는 최소화하는 중이다. 

      글로벌 PE들 가운데 이미 국내 파트너가 2명 이상인 곳들은 '성과평가'를 두고 경쟁해야 할 상황으로 보인다. 

      TPG의 경우, 한국 오피스의 '공격적 확장' 모드를 접고, '포트폴리오 관리'로 무게 중심이 바뀌고 있다. 최근 중소형 거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딜 존재감을 유지하려는 모습이지만, 카카오모빌리티 매각 등 주요 트랜잭션은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TPG는 오랫동안 이상훈-윤신원 체제가 장기간 이어졌지만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윤신원 부대표는 2025년  BU파트너로 선임됐고, 올해 인사에서 글로벌펌 파트너로 승진 인사가 단행됐다. 글로벌 파트너는 전 세계 거래(deal)에 대한 캐리(Carried interest)를 나눠 갖는 파트너로, 극소수로 전해진다.

      KKR도 국내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글로벌 PEF 중 국내에 파트너가 2명인 곳이다. 박정호 한국 총괄 대표에 이어 2023년 김양한 부대표가 파트너로 승진했다. 최근 KKR에서는 김양한 부대표가 대다수의 딜을 총괄하고 있고, 박정호 총괄 대표는 지난해 7월 TPG로부터 화장품 용기 회사인 녹수를 8000억원에 인수하는 딜을 이끌었다. 

      이들 각 파트너 혹은 MD의 성과가 글로벌 본사로부터 인정 받으려면 본사의 지원이 필수다. 즉 한국을 '성장국면'에 있는 시장으로 보고 본사 차원에서 다양한 리소스를 아낌없이 지원받아야 한다. 그래야 고액의 연봉을 지급하면서 여러 명의 파트너를 둘 명분이 생긴다. 반대로 한국 시장을 포트폴리오 관리에 치중해야 하는 시장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굳이 여러 명의 파트너를 한국 오피스에 둘 이유도 없게 되고, 파트너들은 제한된 자원으로 성과경쟁을 벌여 밀리거나 혹은 살아남는 선택지만 남게 된다. 

      글로벌 PE들의 한국 시장에 대한 시각 변화가 최근 도드라진 곳이 블랙스톤으로 꼽힌다. 

      블랙스톤은 2025년 9월 준오헤어를 인수해 다양한 인수 후 통합(PMI)작업을 진행 중이다. 다만 준오헤어를 두고 한국 지사의 독자적 관리가 아닌, 뉴욕 본사(Global HQ)의 '직할 통치'가 시작된 모양새다. 

      블랙스톤은 준오헤어 인수 후 단순 재무 감사를 넘어 본사 직속의 포트폴리오 운영 그룹(Portfolio Operations Group)을 전면 배치하는 강력한 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로레알 등 글로벌 소비재 기업 출신의 운영 전문가들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기존 준오헤어 경영진과 충돌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블랙스톤이 준오헤어를 로컬 미용 프랜차이즈가 아닌, 본사가 직접 설계하는 ‘글로벌 K-뷰티 플랫폼’ 자산으로 재정의했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본사가 직접 운영 인력을 ‘내려보내는’ 구조는 한국 오피스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과거 한국 오피스가 딜 발굴(Sourcing)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본사의 전략을 현장에서 관철하는 실행(Execution) 중심 조직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본사의 개입 강도가 높아질수록 한국 법인의 전략적 자율성은 좁아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사실상 로컬 리더십에 대한 본사의 밀착 감시로도 읽힌다. 자칫하면 한국 오피스가 글로벌의 '하청지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나온다.

      문제는 이런 준오헤어의 성패여부에  대한 책임은 블랙스톤 한국 법인을 이끄는 국유진 대표 체제에 넘겨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오영 매각 성공 이후 본사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온 국 대표에게, 준오헤어는 본사의 직접 통제와 로컬 경영 사이의 균형을 증명해야 하는 가장 까다로운 시험대다. 운영 주도형 PMI가 탑라인 성장을 증명한다면 국 대표의 입지는 글로벌 차원으로 격상될 수 있다. 반대로 내부 알력이나 성과 부진이 노출될 경우 리더십 구조 전반에 대한 본사의 재검토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

      글로벌 PE들의 최근 인사 흐름은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한국 오피스는 단순히 본사 차원에서 활용하는 '전초기지'냐 혹은 그 이상이냐는 점이다. 이미 글로벌 자본은 투자환경의 변화를 두고 선택과 집중에 들어간 상황이다. 한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지만, 그렇다고 자금과 인적 리소스를 무조건적으로 배분할 대상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사 차원에서 자본 배분 순서가 바뀌는 순간, 사람도 바뀐다는 점에서 최근 파트너급 인사는 글로벌 PE의 한국 시장 전략 변화의 신호탄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