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TV에 등장한 블랙스톤, 한국은 여전히 '조용한 시장'
기관 자금만으론 성장 한계…국내 PE도 '자금원 다변화'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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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글로벌 대체투자 운용사 블랙스톤은 지난해 9월 일본에서 TV를 포함한 대형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했다. TV 광고에는 공동창업자 겸 CEO인 스티븐 슈워츠먼이 직접 등장했고, 흑백 톤 클로즈업 화면으로 "Blackstone doesn't wait for change. We drive it."(블랙스톤은 변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가 변화를 만든다)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사모펀드 운용사가 TV에 등장한다는 건, '대중'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뜻이다. ETF 광고처럼 상품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보험 광고처럼 혜택을 나열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우리가 어떤 회사인지'를 먼저 알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모펀드가 스스로를 브랜드처럼 소개하는 장면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 실제로 당시 주요 외신은 블랙스톤의 일본 TV 광고를 보도하며 'PE 브랜드 빌딩의 새로운 시대'라고 표현했으며, 사모펀드 업계의 '스포트라이트 회피'가 더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도 짚었다.
사실 이런 광고는 시장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에서는 개인 투자자 대상 프라이빗 마켓 상품이 실제로 자금을 모으고 있다.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블랙스톤이 일본에서 선보인 개인 투자자용 PE 펀드는 출시 4개월 만에 12억 달러를 모으기도 했다. 개인 자금이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운용사 입장에서도 이름을 알리고 신뢰를 쌓는 작업의 중요성이 커진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프라이빗 마켓을 개인과 고액자산가 채널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져 왔다. 유동성을 일정 부분 제한하되 접근성을 높인 구조의 상품들이 늘어나고, 대형 운용사들도 '프라이빗 웰스' 채널을 핵심 성장 축으로 강조하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기관만 상대하던 시장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TV에 등장한 블랙스톤은 단순한 광고 한 편이 아니라, 프라이빗 마켓이 어디까지 친숙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읽힌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국내에서 PEF는 여전히 연기금,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장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반 투자자에게는 '뉴스에서만 보는 이름'에 가까운 존재다.
광고에서 흔히 접하는 KODEX나 TIGER ETF처럼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 고르고 비교하는 상품도 아니고, 운용사가 대중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릴 필요도 크지 않았다.
여기에 업계 특유의 문화도 한몫한다. 국내 PEF는 오랫동안 '조용히 성과로 말하는' 업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언론 노출을 최소화하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안정적인 운용에 도움이 된다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인터뷰나 공식 발언을 꺼리는 경우도 흔하다. 자연스럽게 운용사 이름 자체가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도 많지 않았다.
다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모 크레딧이 커지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관 자금만으로 계속 커질 수 있느냐"는 질문이 점점 더 현실적인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운용사들 사이에선 고액자산가 자금이나 세컨더리 형태를 통해 개인 자금이 조금씩 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검토하는 얘기도 나온다. 아직은 조심스러운 단계지만, 과거에는 잘 들리지 않던 논의다.
결국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광고 기술이나 마케팅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구조의 차이에 가깝다. 일본은 개인이 프라이빗 마켓에 투자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운용사가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시장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관 중심 구조가 단단하고, 업계 문화 역시 공개 노출에 신중한 편이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일본에서는 TV에 블랙스톤이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왜 안 나올까.
지금으로선 답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에 가깝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 개인 자금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젠가는 이 질문의 답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그 장면이 몇 년 뒤에는 자연스러워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