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가 10.7조…결국 삼성전자 인수할 거란 관측
상장사 간 내부거래라 싸도, 비싸도 문제 가능성
삼성SDI "독립이사들이 거래 조건 검토할 예정"
공정성에 자본효율까지 양사 주주 이해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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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가 삼성디스플레이 지분을 매각해 현금 확보에 나선다. 시장 관심은 이 지분을 누가, 어떤 구조로, 얼마에 인수하느냐다. 삼성그룹 내에서 조달 목적으로 비상장 계열사 소수지분 유동화에 나선 사례가 많지 않아서다.
당장 삼성전자가 마땅한 대안으로 꼽히지만 상장사 간 내부거래인 만큼 거래 공정성을 기하는 게 중요할 거란 분석도 나온다. 양사 주주 입장이 달라 너무 비싸도, 싸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19일 삼성SDI는 투자 재원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작년부터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매각을 검토해왔다. 작년 2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지만 전방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면서 결국 매각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삼성SDI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15.2%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분기보고서 상 해당 지분의 장부가는 약 10조6800억원으로 전체 또는 일부를 유동화하면 재무 부담을 상당히 줄여낼 수 있는 규모다.
문제는 외부에서 이만한 규모의 소수지분 투자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국내 2차전지 업체 상당수가 증권사와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체결해 손쉽게 지분을 유동화했지만 회계처리 방식이나 진성매각 여부를 둘러싼 잡음이 적지 않았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법으로 막히지 않았다 뿐 당분간 타법인 지분이어도 비상장 주식이라면 PRS를 활용하기 쉽지 않을 거란 시각을 내놓고 있다.
외부 재무적투자자(FI)나 전략적투자자(SI) 유치 방안 역시 그간 삼성그룹 기조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FI를 유치하려면 기업공개(IPO)나 콜옵션 등 회수 보장·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구조화 작업이 필요하다. 삼성그룹에서 조달 목적으로 이런 복잡한 거래를 고안한 전례가 드물다. 과거 디스플레이 사업부 분할·합병 당시 IPO 계획이 검토되기도 했으나, 지금 와서 중복상장을 추진할 개연성 역시 떨어진다.
삼성디스플레이 최대주주가 삼성전자(84.8%)인 만큼 외부 SI에 지분을 내어줄 가능성 역시 제한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전략적 협업을 희망하는 후보군이야 많겠지만, 대형 디스플레이 고객사 대부분은 삼성전자 경쟁사이기도 한 탓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와 PRS 창구나 외부 FI를 찾는 방안 모두 재무여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의 조달 수단이지, 삼성그룹에서 이런 복잡한 방식을 쓸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라며 "최대주주가 무려 삼성전자인데, 그룹 외부로 지분이 넘어가게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러 상황을 따져보면 최적 인수자로 결국 삼성전자가 지목된다. 최대주주이기도 하지만 순수 자본력이나 현금 동원력 측면에서도 사실상 대체자가 없는 후보군이다.
그러나 개정상법 등 뒤바뀐 시장 환경이나 주주 관계를 감안하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작업일 거란 관측도 나온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100% 완전 자회사화 등 명분은 마련하기 나름이지만, 그룹 내 상장사끼리 비상장 지분을 사고파는 만큼 양사 주주 이해관계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지 않게끔 변수를 최대한 통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일 삼성SDI 공시에서도 이를 고려한 대목이 확인된다. 회사는 "향후 거래 상대와 규모, 조건, 시기 등은 사외이사(독립이사)로만 구성된 지속가능경영위원회가 검토하고 이를 이사회에 보고하고 진행"한다고 밝혔다. 삼성SDI 최대주주가 삼성전자(지분 19.44%)인 만큼 독립성을 갖춘 사외이사들이 이사회보다 먼저 구체적인 조건을 따져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장 조달이 시급한 회사로선 장부가 수준으로도 큰돈을 마련하는 구도지만 주주 시각은 다를 수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작년 수익성 회복에 성공한 데다 올해부터 애플 폴더블 OLED를 독점 공급하게 되면서 시장 지배력을 굳혀가는 국면에 들어섰다. 성장성을 감안하면 장부가 수준에 매각하는 게 적절한지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반대로 삼성전자는 현 상태로도 지배력에 문제가 없어 굳이 높은 가격에 인수할 유인이 떨어진다.
삼성전자 주주 입장에선 더 복잡하게 따지고들 여지도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소수지분 인수가 삼성SDI에 대한 간접적 지원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주주가 보기에는 두 자릿수 투하자본이익률(ROIC)이 나오는 반도체나 신사업 확장을 위한 인수합병(M&A) 대신 삼성SDI를 지원하느니 배당을 희망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과거 삼성그룹 수뇌부 차원에서 배터리 사업 ROIC가 너무 낮다는 이유로 대규모 투자를 반려하기도 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수년 전만 해도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겠지만 지금은 단순히 거래 가격 외에도 절차상 공정성, 자본효율 등 여러 가지 시비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라며 "반도체나 M&A 투자 대신 배터리에 10조원이 들어간다고 하면 기관에서도 반기기는 어려울 것. 배당 수익을 100% 누릴 수 있다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삼성디스플레이는 2024년에 배당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