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칩스법 변수 겹쳐…관세·보조금 '이중 리스크'
"법적 근거 조속 마련해야…기업 불확실성 해소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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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공방으로 대미투자특별법안이 국회에 계류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연방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에도 '관세 공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자동차, 반도체, 이차전지, 철강 등 관세 영향을 받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대외 통상 환경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국회 차원의 제도 정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미투자특별법을 심사하는 국회 대미투자특위 활동 기한은 오는 3월9일까지다. 3월 초로 예상되는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여부 역시 아직 불투명하다. 지난 24일 대미특위 첫 회의는 법안 상정도 못 한 채 입법 공청회만 마치고 끝났다. 특위가 본격 가동되지 못할 경우 활동 시한 내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합의에 따라 최초 25%로 책정됐던 상호관세가 지난해 11월부터 15%로 인하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안 처리 지연을 이유로 자동차 등 품목 관세와 함께 상호관세를 25%로 재인상하겠다고 위협했다.
특히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일부 기업들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따른 투자 인센티브와 관세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는 구조다. 정책 조율 기능이 지연될 경우 기업들이 관세와 인센티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IRA는 상업용 전기차(EV) 리스 조항 해석에 따라 한국산 차량의 세액공제 적용 범위가 달라졌고, 배터리 핵심광물 규정 역시 행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혜 여부가 갈렸다. 칩스법도 보조금 지급 조건과 중국 투자 제한 범위가 개별 협상으로 구체화되는 만큼 기업 단독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는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을 중심으로 북미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IRA상 북미 최종 조립 요건과 배터리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기 위한 전략이다. 다만 미국이 품목별 관세 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전례가 있는 만큼, 통상 리스크는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현대차 측은 국민의힘과의 간담회를 통해 대미투자특별법안을 신속히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이미 총 7조2000억원의 재무적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 유럽 등 경쟁사들과 동등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관세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하이닉스도 미국 내 첨단 패키징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 최혜국(MFN) 대우가 유지되지 않거나, 대만·일본 등 주요 생산국 대비 높은 관세율이 부과될 경우 관세 부담에 따른 상대적 수출 경쟁력 저하는 불가피하다.
정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미국 측이 양해각서(MOU)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오해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향후 통상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절차대로 진행되는지 미국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위 논의 지연이 한미 통상 신뢰 문제로 확산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당초 대미투자특위는 국회의 사전 동의·보고 범위 설정, 한미전략투자공사 설립 여부와 규모, 리스크 관리 방안 등을 조율한다는 방침이었다. 대규모 대미 투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정·통상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제도적 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국민의힘 소속 특위 위원들은 자동차에 이어 바이오 등 민간 업계 의견을 청취하는 등 개별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특위 차원의 공식 논의가 본격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별 의견 수렴이 제도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불어민주당은 산업통상부와 대미투자특별법안 처리 방안 논의를 위한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국회의장에게 법안 직권상정까지 요구하는 등 단독 처리를 시사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 측이 관세 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상황도 있었던 만큼 대미투자 관련 법적 근거를 신속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기업들의 투자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한미 양국 간 합의 이행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차원에서도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