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뽑을 돈으로 AI"…금융업 호황에도 증권가 채용 '신중 모드'
입력 2026.03.05 07:00

증시 랠리發 금융사 실적 개선에도 서무·RA 채용은 축소 흐름
중소형 VC, 심사역 보조 채용 검토했다가 AI 활용으로 '백지화'
"대규모 공채 대신 선별 채용"…고정비보다 자동화·경력직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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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증시가 새 정부 출범 이후 강세 흐름을 이어가며 증권사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증권가를 중심으로 한 금융업계의 주니어 채용은 오히려 보수적으로 기울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번역·자료정리·리서치 보조·서무 등 이른바 '막내 역할'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호황이라고 채용을 늘리던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증권사 여러 곳은 서무·지원 직군을 중심으로 신입 채용을 최소화하거나, 퇴사로 공석이 발생해도 신규 채용 대신 경력직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리서치센터나 IB부서에 배치된 신입 인력이 공시 모니터링, 산업 자료 취합, 보고서 초안 정리, 영문 번역 등을 맡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당 업무를 팀 내 기존 인력이 AI 도구로 처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사 애널리스트는 "뉴스 스크랩과 기초 데이터 정리 업무는 AI의 자동 요약·검색 기능으로 상당 부분 대체됐다"며 "보조 인력을 별도로 둘 필요성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실적 요약, 뉴스 클리핑, 리포트 초안 작성 등 리서치센터의 기초 업무 일부를 생성형 AI가 수행하면서 RA(리서치 어시스턴트) 채용에도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금융(IB)부문도 유사하다. 한 중소형 증권사는 정기적으로 채용하던 서무 직군을 지난해부터 충원하지 않고, 기존 인력이 AI를 활용해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과거에는 딜 제안서 초안 작성, 비교기업(피어그룹) 멀티플 정리, 산업 리포트 발췌 등이 주니어의 주요 역할이었으나, 최근에는 생성형 AI 기반 리서치 도구로 1차 초안을 만들고 실무자가 이를 보완하는 식이다. 실무 효율은 높아진 반면 단순 보조 인력 수요는 줄어든 셈이다.

    정부의 모험자본 공급 강화 기조로 자금 유입이 이어지는 VC 업계도 신규 채용에는 신중하다. 

    최근 한 중소형 VC는 심사역 보조 인력 채용을 검토하다가 이를 철회하고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기로 했다. 투자 검토보고서 초안 작성, 기업 정보 취합, 시장 자료 요약 등 초기 단계 업무를 AI 도구로 처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 VC 관계자는 "딜 소싱 건수가 늘어도 과거처럼 인력을 곧바로 늘리지는 않는다"며 "업무 효율을 먼저 점검한 뒤 필요할 때 채용을 검토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AI 활용이 확산되면서 금융업계의 주니어 채용 기조는 점차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 대량 자료 검색·요약·초안 작성 등 문서 기반 업무의 생산성이 개선되면서, 과거 신입 인력으로 보완하던 영역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융업 특성상 신입 채용에 수반되는 교육·컴플라이언스·권한 관리 비용 부담까지 감안하면, 자동화가 가능한 영역부터 채용을 줄이는 흐름은 자연스럽다는 평가다.

    이 같은 변화는 대형사와 중소형사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투자증권 등 일부 대형사는 정기 공채를 유지하며 장기 육성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상당수 증권사는 수익 직결 직무 위주의 수시 채용이나 경력직 중심 선발로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지원·서무 성격이 강한 직무는 축소하거나, 채용하더라도 인턴·계약직 형태로 운영하는 사례가 늘었다.

    신입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자료 정리와 번역 등 '업무 보조'가 성장 경로의 출발점이었다면, 최근에는 AI 활용 능력을 전제로 이를 해석·검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기초 작업은 자동화가 가능해진 만큼, 산출물의 책임을 질 수 있는 판단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다만 효율 중심의 인력 운용이 중장기적으로 '허리 공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주니어 채용이 줄어들면 5~8년차 중간 연차 인력 풀이 얇아질 수 있고, 몇 년 뒤 다시 인력난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최근 증권사·VC·자산운용사를 가리지 않고 금융업계 전반에서 중간 연차 실무자 부족 문제가 상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신입 채용 신중론'에 대해 한 증권사 IB 관계자는 "현장에서 AI가 정리·검색·요약 업무를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규모로 신입을 뽑아 육성하던 구조보다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별적으로 채용하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