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시장 복귀계좌(RIA)'가 국회 문턱에서 공전하면서 정책의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목표했던 1분기 내 출시가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환율과 증시가 동시에 흔들리며 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70원 선 후반에서 거래됐다. 이날 새벽 한때 1506.5원까지 치솟은 뒤 소폭 안정됐다. 통상 야간 시간대는 거래량이 적어 변동폭이 확대되긴 하지만,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건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이란 전쟁 등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폭증하면서 원화 가치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BNY 홍콩, 웰스파고 등 글로벌 은행은 최악의 경우 원화 가치가 달러당 1570~1600원까지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한국은행은 이날 오전 중동 상황 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현 상황은 과거와는 달리 달러 유동성이 풍부하고 우리나라의 대외차입 가산금리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과도한 변동에 대해선 적기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환시장 불안과 더불어 국내 증시의 패닉 셀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코스피가 전 거래일 대비 8% 이상 급락한 상태가 유지되면서 서킷브레이커(CB)가 발동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2000년 이후 이번이 7번째다. 과거 9·11 테러(2001년)나 코로나19 팬데믹(2020년) 등 글로벌 금융 충격 시기와 비견될 만큼 시장의 변동성이 극심해진 모습이다.
업계에선 이를 완화할 정책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국회에 가로막혀 출시 시점이 불투명해진 RIA가 대표적이다. RIA는 해외 주식 자산을 국내로 환류시키는 조건으로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출시될 경우 해외에 머물던 달러를 국내로 유입시키고 증시 수급을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RIA가 계획대로 출시되어 서학개미 자산이 국내로 돌아왔다면 지금 같은 급락 국면에서 시장을 떠받치는 기초체력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RIA는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다. 관련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1월 발의된 후 한 달여 만인 지난달 23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상정됐다. 이날 160여건의 다른 안건과 함께 소위원회로 회부됐다. 오는 5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우선 논의 대상이 될지는 알 수 없다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RIA 자체의 효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입법 지연의 배경으로 꼽힌다. 최병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를 통해 RIA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최 수석전문위원은 "해외주식 매도를 유도해 외환 공급을 늘리는 방식은 고환율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개인투자자들의 우회 거래로 인해 외환유입 효과가 감소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정책이 공전하는 사이 해외주식 매수세는 여전히 견고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외화증권 보관액은 지난해 말 1635억달러에서 지난 3일 기준 1654억달러로 두 달 만에 약 20억달러가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전산 개발 및 마케팅 등 상품 판매를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라며 "정작 입법 단계에서 국회조차 설득하지 못해 상품 출시가 미뤄지면 그에 따른 혼선과 비용은 고스란히 업계와 투자자의 몫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