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우위'로 흘러온 실명계좌 제휴, 빗썸 사태로 판도 바뀔까
입력 2026.03.05 07:00

빗썸 사태로 국민은행과 계약기간 6개월로 축소
지난해 제휴은행 변경한 빗썸…"연장도 해지도 부담"
거래소 리스크에 촉각…'관리형 연장' 해석에 무게
거래소 주도 기류에 변곡점 생길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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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빗썸이 KB국민은행과의 실명계좌 제휴 계약 기간을 기존 1년에서 6개월로 단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 거래소 우위로 기울어온 실명계좌 제휴 시장의 주도권 구도에 이번 조치가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과 맺은 원화 입출금(실명계좌) 제휴 계약 재계약을 기존 1년에서 6개월로 단축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간 은행과 거래소 간 제휴는 통상 1년 단위로 이뤄져 왔지만, 빗썸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계약 기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율됐다는 평가다.

    이는 최근 거래소 중심으로 재편됐던 실명계좌 제휴 시장의 힘의 균형에 변화 조짐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실명계좌 제휴 시장은 은행이 주도했다. 자금세탁(AML) 우려와 금융당국 감독 부담을 이유로 은행들이 거래소 제휴를 꺼렸고, 계약 조건 역시 은행이 정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시장이 성장하고 거래소에 이용자가 집중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은행 입장에서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제휴는 중요한 저원가성 예금 확보 창구가 됐다. 실제 두나무가 운영하는 업비트의 경우 제휴 은행인 케이뱅크와의 계약 기간을 1년에서 6개월로 단축한 배경에 거래소 측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계약 기간이 짧아질수록 거래소는 조건 재협상이나 제휴 은행 변경에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거래소 제휴 확대에 나서면서 협상력은 점차 거래소 쪽으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케이뱅크는 두나무가 운영하는 업비트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상태로, 하나은행과 우리은행까지 제휴 경쟁에 뛰어들면서 시장 내 높아진 거래소 영향력을 보여줬단 평가다.

    하지만 빗썸과 국민은행의 경우는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양측은 최근 계약을 6개월 단기로 연장했는데,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 기간 조정이 거래소가 아닌 은행 측 요구에 따라 이뤄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6개월 계약은 실무적으로도 상당히 부담이 큰 구조다. 실명계좌 제휴는 계약 체결 이후에도 내부 사업성 평가와 자금세탁 위험성 평가를 정기적으로 진행해야 하며, 계약 연장을 위해서는 사전에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하고 수리 절차를 거쳐야 한다. 통상 준비 기간만 수개월이 소요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6개월이면 계약을 맺자마자 다시 내부 사업성이나 리스크 등의 평가 프로세스를 돌려야 한다"며 "보통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이유가 이런 행정·리스크 관리 부담 때문인데, 6개월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른 거래소와 은행 간 제휴는 대부분 1년 단위로 이뤄지고 있다. 이번 단기 연장을 두고 단순 협상 결과라기보다 리스크를 지켜보겠다는 관리형 연장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빗썸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사고 이슈도 변수다. 업계 일각에서는 빗썸 사태로 거래소를 공공 인프라 수준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명분을 제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빗썸이 실명계좌 제휴은행을 농협은행에서 국민은행으로 변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면서, 은행으로서도 계약 연장과 해지 모두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며 "6개월 연장은 사실상 상황을 두고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실명계좌 제휴의 힘의 균형이 다시 은행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가상자산 2단계 입법과 스테이블코인 규율 체계가 구체화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 강화를 명분으로 보다 보수적인 계약 구조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두나무가 운영하는 업비트와 케이뱅크의 제휴를 두고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등이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 전반이 거래소 리스크를 재평가하는 분위기로 전환될 경우 이 경쟁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까지는 거래소가 협상력을 쥐고 있었다면, 이번 6개월 연장은 은행이 다시 주도권을 시험해보는 계기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금융지주 일각에서는 만약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할 경우 코인거래소 영향력이 더욱 줄어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만약 직접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을 여러 거래소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거래소'와 제휴를 맺는지가 더이상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