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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동 사태가 격화하면서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올해 실적 기대감이 급격히 식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국제유가 하락과 전력 도매가격(SMP) 안정 덕에 대규모 흑자 전망이 우세했지만, 에너지 가격이 급등 조짐을 보이면서 분위기가 빠르게 달라지는 모습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를 떠올리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4일(현지시간)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인 카타르에너지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에 대해 '불가항력' 상황을 선언했다. 지난 2일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LNG 제조시설이 파손되면서 가스 생산이 중단된 여파다. 에너지업계에선 카타르 LNG 생산 거점인 라스라판 공장이 재가동에 최소 2주, 완전 가동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추가로 2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카타르는 세계 2위 LNG 수출국으로 현지 생산량이 전 세계 공급량의 약 20%를 책임지고 있다. 생산 정상화에 한 달여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당분간 LNG 가격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미 가격이 치솟는 상황이다. 4일 기준 동북아 LNG 현물 가격 지표인 JKM은 가스열량단위(MMBtu, 1MMBtu=100만톤)당 15.77달러를 기록하며 사태 직전인 지난달 27일보다 4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약 14%가 오른 국제 유가보다 상승세가 훨씬 가파르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지정학 분쟁으로 생산이나 유통에 차질이 생기면 LNG가 원유보다 변동성이 높게 나타난다"라며 "기름처럼 재고 선박을 띄워 물량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물류 경로도 제한적인 데다 카타르를 포함해 분쟁 인접 지역이 전 세계 공급량 4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업계에서는 LNG 가격 불안이 한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하기 직전까지도 증권가에선 올해 한전의 실적과 주가 전망을 높여잡던 상황이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아래에서 안정되고 SMP 역시 kWh당 100원 안팎에서 하향 안정화하는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SMP는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력을 구매할 때 적용하는 가격으로 연료 구입비와 함께 비용 구조의 핵심 변수다. SMP가 안정되면 자연스럽게 비용 구조를 개선하면서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중동 정세가 흔들리면 이런 기대를 지속하기도 어렵다. 이란이 직접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의지를 밝힌 만큼 당분간 에너지 가격 인상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거래량 20%가 오가는 길목이다. 특히 카타르가 LNG를 뽑아올리는 노스돔 가스전은 호르무즈 해협과 맞은편 이란 영토 인근까지 걸쳐 있어 지정학 리스크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문제는 한국 전력시장 구조상 연료비 상승 부담 대부분이 한전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발전사들이 연료비를 반영해 전력을 생산하면 한전 홀로 이를 도매가격으로 받아주는 구조다. 이때 적용되는 SMP를 산정할 때 LNG 발전 원가가 80~90% 가까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시장에서는 LNG 발전이 전력시장에서 사실상 도매가격을 결정하는 발전원으로 통한다.
반대로 한전은 SMP가 치솟으며 늘어난 전력 구매비를 전기요금에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에도 LNG 가격 급등으로 SMP가 치솟자 한전은 수십조원 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비슷한 상황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러-우 전쟁 당시 바닥난 한전의 자본력을 올해는 좀 보강할 수 있을까 했는데, 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가 많다"라며 "연내 산업용 고객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요금체계 개편 계획까지 잡혀 있는데 또 가격 변동 리스크를 독박 쓰면 발전소나 송배전 인프라 등 당면한 전력시장 투자 계획까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주가도 이런 불안감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한전 주가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6만원 안팎에서 움직이며 실적 기대감을 반영했지만 중동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 급격히 하락했다. 한전 주가는 지난 5거래일 동안 25% 이상 하락해 5일 종가 기준 4만8200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