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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증권사 프라이빗뱅킹(PB) 창구가 단순 리테일 자금 판매 채널을 넘어 신규 출자(LP) 창구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출자해 고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이 고액 자산가들의 관심을 끌자 회사 차원에서 직접 투자은행(IB)이나 회계법인을 접촉해 거래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최근 다수의 증권사 자산관리(WM) 부문은 외부 인수합병(M&A) 자문사에 직접 "좋은 거래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요청하며 투자 기회를 찾는 것으로 확인된다. 과거엔 PE 사업부문을 갖춘 일부 증권사가 이 같은 역할을 수행했지만, 올 들어 회사 차원 전략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웬만한 대형 증권사 WM 조직은 따로 팀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소 적극적인 영업에 나선 곳은 WM 부서가 프로젝트 펀드 물량을 직접 총액으로 인수해 재매각(셀다운)할 수 있다고 독려하고 있다. 증권사 운용한도(book)가 커지고는 있지만 개별 센터 단위 행보만으론 보기 어렵다는 평이다. 십시일반 격이기는 하나 PB가 확보한 고액 자산가들의 자금풀이 커지면서 준(準) 기관화하는 과정으로 보인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형 회계법인 한 M&A 담당임원은 "증권사 PB에서 미팅 요청이 와서 거래 주선 기회인가 했는데, 반대로 좋은 딜을 소개해달라는 게 요지였다"라며 "고액 자산가들의 기존 투자풀 한계도 있고, 이쪽은 고객들이 스터디도 잘 된 데다 상품 구조에 대한 안목이나 이해도도 높아서 수요가 상당하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자금 공급 구조의 변화 신호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책적으로도 증권사들은 올해부터 유동성 중개, 공급원으로서 역할이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PB창구가 전문투자형이 아닌 바이아웃(경영권 거래) 딜에서도 '미니 LP'처럼 기능할 경우 잠재 영업망이나 자금 경로가 확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과거부터 증권사들은 50억~100억원 단위로 자체자금(PI)을 출자하며 LP로서의 역할을 일부 수행해오긴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자금들은 대개 대형 운용사(GP)와 관계를 트고 향후 거래에서 인수금융 주선이나 기업공개(IPO) 주관 지위 등을 확보하기 위한 교차 영업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략적 포석보다는 실질적인 자금 공급 축 역할을 타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탁 구조를 활용해 자금을 모으고 조합원으로 참여하던 기존 PB 역할과도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M&A 자문사를 접촉하는 것 역시 연기금이나 공제회처럼 특정 M&A 거래를 전제로 딜 단위 투자 기회를 선별하겠다는 움직임에 가까워 보인다는 평가다.
작년까지만 해도 적기에 자금을 모으지 못한 증권계 PE들이 PB 창구에 급하게 손 벌리는 걸 경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SK온 상장전투자유치(프리 IPO)도 결과적으로는 3년 만에 9.5% 수준 내부수익률(IRR)을 기록했다"라며 "고액 자산가라 해도 대형 LP들의 판에 개인 자금을 끌어들이는 걸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었는데, 거래 상대방 측에서 참여를 희망할 경우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간 M&A 시장에서 대형 LP들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을 뿐 WM 시장 자금풀 자체는 웬만한 공제회에도 밀리지 않는 규모다. 국내 WM 시장은 지난 2024년 3000조원 규모를 돌파했는데, 이 중 고액 자산가 비중은 해마다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