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에 쪼개지는 삼성전자…내부 인력관리 능력 시험대
입력 2026.03.11 07:00

성과급 상한선 폐지 요구하며 파업 돌입한 노조
성과보상 필요하나 요구안 두고 사업부간 이견
1등 기업다운 성과 보상 필요한데 고심도 커
다른 사업부 적자에 부서이동 기피, 형평성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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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반도체 산업 자체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역대급 실적을 발표하면서 뚜렷한 성장세를 입증하고 있는 한편 반도체 핵심 인재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솟는 모습이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기업이 리더십을 확보하려면 명확한 기술 우위를 점해야 한다. 이에 따라 산업 내 지위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인재 확보가 가장 우선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기업의 노사 갈등이 빈번해지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해 말부터 사측을 상대로 진행한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파업 절차를 밟고 있다. 반도체 산업 자체가 호황기에 접어들었고 경쟁사들도 좋은 대우를 약속하는 만큼 회사 역시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그만한 보상을 제공해달라는 것이 요구안의 골자다. 사측은 재무적 측면의 어려움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긴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파업을 두고선 직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성과급 지급에 대해선 동의하지만, 돈을 버는 사업부와 그렇지 못한 사업부 직원 간 이견도 감지된다. 그럼에도 노조는 지금을 성과 보상 체계 개편의 적기로 보고 있다. 회사가 AI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지난해와는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불황기 동안 삼성전자의 잉여현금흐름(FCF)은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36조원으로 올라섰다. SK하이닉스에 내줬던 글로벌 D램 시장점유율 1위를 최근 탈환하는 등 주력 사업 회복세가 뚜렷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일반 D램, 낸드 메모리 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할 것임을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향후 연간 영업이익 100조원 이상을 달성할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불황을 대비해 현금도 쌓아뒀던 터라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한 순현금만 100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 '1등 기업'이라는 가치가 흔들린 점도 파업 불씨가 된 모습이다.

    당장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등은 높은 연봉, 좋은 대우와 함께 해외 영주권 취득, 자녀 학비 지원 등을 미끼로 반도체 인재를 쓸어갔다.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도 기업 이름값에 비해 보상, 처우가 떨어진다는 불만이 지속됐고, 실제 회사를 이탈하는 직원도 늘었다. 노조가 파업을 택한 데 SK하이닉스의 파격적인 성과급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듯 보이나, 실상은 성과 보상 체계에 대한 불신과 연이은 인력 유출이 근본적 원인이란 해석도 나온다.

    문제는 사업 구조상 회사가 노조의 요구안을 모두 수용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쟁점이 된 성과급 상한선 폐지의 경우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사업부와 적자 사업부 직원 간 성과급 차이가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재는 성과급 상한선이 50%로 정해져 있어 차이가 제한적이나, 제도 개편 시 메모리 사업부가 인당 수억원대 성과급을 받는 동안 다른 사업부의 성과급은 그에 크게 못미치거나 거의 못받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처럼 부문, 부서 이동이 가능한 구조에서 특정 부서 기피, 직원 분열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각기 다른 사업부가 사업상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통합적인 성과 보상 기준을 마련하기가 만만찮은 상황이다. SK하이닉스만 하더라도 사업 구조가 메모리 반도체 중심이지만,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스템LSI 사업부가 메모리 사업부와 DS 부문으로 묶여있다. DS 부문에 한정한 기준을 마련한다면 세트사업(DX), 디스플레이 부문 직원들의 반발을 고려해야 하고, 그룹사 특성상 삼성전자의 성과 보상 기준이 다른 계열사에 연쇄적으로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그룹사 내부는 물론 인력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이에 이번 노사 갈등으로 그룹의 인재 관리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다른 계열사들이 삼성전자와 유사한 시기 임단협을 진행했고, 삼성전자 파업 추이를 지켜보며 사측과의 협상에서 다양한 전략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거버넌스) 특성상 성과 보상 체계 마련 시 계열사 간에도 영향을 받을텐데, 사업부별 수장이 각각인 상황에서 이를 총괄해 통합적인 전략을 짜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룡 체급의 종합사업체 구조에서 의사결정 딜레마가 발생하는 셈"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경영 환경 역시 직원들의 성과급 지급 명목으로 조 단위 자금을 풀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는 사이클을 타는 반도체 사업 특성상 현금을 쌓아놓는 전략을 취해왔는데, 그동안 밝힌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기업 가치 제고 계획 등을 고려했을 때 쉽사리 돈을 쓸 여유는 없다는 설명이다. 경쟁사와의 임금, 처우 비교는 삼성전자가 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지속될 수밖에 없고, 파운드리 등 몇몇 사업부에 대한 투자가 현재로선 더 우선해야 한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금융(IB)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위기론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왔는데, 현재 사업이 잘 된다고 바로 보유한 현금을 풀라는 요구에 응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삼성전자의 경우 언제 반도체 업황이 고꾸라질지 모른다는 판단에 적정 수준 이상의 재무 상태를 유지하는 데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왔다"며 "탄탄한 현금고는 애초 반도체 기업으로서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요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