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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방위산업이 중동 정세 변화 속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란 사태를 계기로 한국산 방공 체계의 성능이 확인되며 수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주요 방산업체들의 생산 라인이 이미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어, 급증하는 수요를 단기간에 따라잡는 것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단 평가다.
국내 방산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상승한 상태다. LIG넥스원은 3개월 기준 저점 대비 120%, 한국항공우주(KAI)는 68%, 현대로템은 23% 뛰었다. 이란 전쟁 여파로 증시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방산주들은 연이어 상승세를 나타냈다. 특히 육·해·공 방산 체계를 두루 갖춘 한화그룹은 그룹사 시가총액 합계가 LG그룹을 넘어서며 사상 처음 재계 순위 4위로 올라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한화오션 등 방산 계열사의 주가가 크게 상승한 영향이다.
중동 전쟁에서 아랍에미리트(UAE)에 배치된 천궁-Ⅱ가 실제 가동돼 이란 미사일을 요격했다는 소식이 방산주를 밀어 올렸다. UAE에 배치된 천궁-Ⅱ의 요격 성공률은 96%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위원회 소속 유용원 의원은 "이는 미국 방공무기 패트리어트도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지에서는 요격미사일 소모가 빠르게 늘어나며 공급 부족(쇼티지) 우려가 크단 평가다. 천궁-Ⅱ 개발에는 LIG넥스원(미사일·체계 종합), 한화시스템(레이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발사대·차량) 등이 참여했다.
중동 국가들은 방공무기 조기 인도 요청에 나섰다. UAE는 한국 정부에 천궁-Ⅱ 포대를 기존 계약된 납기보다 앞당겨 공급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생산 일정을 고려해 포대 대신 요격미사일 우선 공급을 논의했고, 그 결과 천궁-Ⅱ(M-SAM2) 요격 미사일 30발이 UAE에 조기 인도된 것으로 파악된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UAE는 한국 정부에 요격미사일뿐 아니라 여러 무기 체계를 함께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UAE에서 급한 상황으로 요격미사일뿐 아니라 천무를 포함해 같이 다른 무기체계들도 추가적으로 납품받을 수 있을지 요청했다"고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중동 내 구체적 수출 국가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UAE가 지난 2021년 천무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 중동 국가들 역시 주요 무기체계의 조기 납품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한국 방산업체들의 가격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단 점 ▲일부 물량 조기 납품에 따라 매출 인식 시점이 빨라질 수 있단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생산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한국 방산 업체들의 최대 과제가 됐다. 군비 수요에 비해 국내 방산업체들의 생산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방산 기업들의 주가는 수출 기대감에 힘입어 급등했지만 실제 실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조기 납품과 추가 수주가 뒤따라야 한다. 현재 생산 여력이 제한적인 만큼 단기간에 공급을 확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방산 빅4 가운데 일부 업체들은 생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현장 인력을 24시간 교대 근무 체제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부담이 상당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선 부담이 상당히 크다"며 "납기일을 당겨달라는 독촉이 이어지고 있지만 화약이 빨리 경화되는 것도 아니고 속도가 단기간에 빨라지긴 쉽지 않다. 추가적인 설비 투자 없이 생산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현재 주요 방산 업체들의 생산 라인은 대부분 90%가 넘는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생산 능력 확대와 함께 핵심 부품 및 소재 공급망 관리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한국 방산업체들은 우선 중동 세일즈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이미 수출을 계획 중인 곳들을 중심으로 계약 가능성을 점검하고 있다. LIG넥스원은 천궁Ⅱ를 도입한 UAE와 사우디, 이라크를 중심으로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L-SAM) 수주를 위한 협상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 등을 묶어 사우디와 패키지 계약을 협상 중이다. 한국항공우주도 차세대 전투기 KF-21을 UAE와 사우디에 납품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고, 현대로템은 K2 전차 이라크 수출을 타진하고 있다.
이한결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란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중동 지역 긴장감은 단기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중동 국가들이 국방력 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내 방산 업체의 중동 사업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중동 분쟁이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초기에는 단기간 내 충돌이란 분석이 많았지만, 분쟁이 격화하며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단 분석이다. 한 증권가 방위산업 연구원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초기에 생각했단 것보단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