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영화관 구독패스' 실험, CJ CGV 재무압박 해결 열쇠될까
입력 2026.03.11 07:00

월 5만원 상당 구독패스 검토 중
4대 배급사 반발·OTT 확산 변수
총차입금 2.7조·부채비율 700%
상반기 CB 7000억 콜옵션 도래
순매출 90% 임대료 구조 논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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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프랑스 영화 산업을 되살린 '구독형 영화 관람 패스권'(이하 구독패스)이 한국 극장가에서도 등장할까. 극장 사업 침체와 재무 부담이 커진 CJ CGV가 구독형 영화 관람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국내 영화 산업 구조상 프랑스 사례가 그대로 적용되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극장과 배급사가 티켓 매출을 나누는 구조인 데다 OTT 확산으로 영화 유통 질서까지 크게 바뀌면서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CJ CGV는 최근 정부 및 영화 업계와 함께 구독패스 도입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 일정 금액을 내고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는 모델이다. 초기 단계에선 월 5만원 수준의 무제한 관람 형태가 내부적으로 거론됐지만, 실제 도입 시에는 일정 기간 동안 관람 횟수를 제한하는 '패스형'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프랑스에서는 유사한 구독형 모델이 극장 산업 회복의 계기가 된 사례가 있다. 프랑스 주요 극장 체인들은 월 구독료를 받고 영화 관람을 허용하는 모델을 도입해 관객 기반을 확대했고, 이는 영화 산업 전체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로나 이후 침체된 극장 산업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구독형 모델이 일정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CJ CGV가 구독형 모델 도입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극장 산업 침체와 함께 회사의 재무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CJ CGV의 총차입금은 약 2조6965억원 수준이다.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700.9%에 달하고, 차입금 의존도는 66.8% 수준이다. 신종자본증권 등 일부 자본성 조달을 제외하면 순차입금은 약 3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극장 사업이 대규모 장치 산업이라는 점도 재무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영화관은 대부분 복합쇼핑몰이나 대형 상업시설에 입점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계약 기간이 15~20년에 이르는 장기 임대 계약 구조를 갖는 경우가 대다수다. 코로나 기간 동안 관객 수가 급감했지만 임대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극장 사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CJ CGV는 코로나 이후 유상증자와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무 구조를 개선해왔지만 레버리지 부담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올해 상반기부터 약 70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의 콜옵션 행사 시점이 돌아온다. 콜옵션이 행사되지 않을 경우 이자율이 기존보다 3%포인트 상승하고 이후 매년 0.5%포인트씩 추가로 올라가는 스텝업 구조다. CGV 입장에선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재무 레버리지 관리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CJ CGV는 비용 구조 개선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CJ CGV는 최근 일부 부동산 운용사들과 극장 임대료 구조 조정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존 고정 임대료 대신 매출 연동 방식으로 임대료를 지급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극장 순매출의 약 90%를 임대료로 지급하는 대신 일정 수준 이상은 상한선(캡)을 두는 구조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설 연휴 이후 CGV 경영진이 여러 펀드 운용사를 찾아다니며 임대료 구조 조정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투자업계에서는 이러한 구조 변경이 회계상 임대 부채 인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극장 임대료가 고정비 형태로 인식될 경우 장기 임대 계약에 따른 리스 부채가 재무제표에 반영되지만, 매출 연동 방식으로 전환될 경우 회계상 인식되는 부채 규모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내부 비용 통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CJ CGV는 최근 일부 극장에서 인력 운영 방식 조정에 나섰다. 정직원 현장 매니저들에게 기존 업무 외에 아르바이트 직원(미소지기) 역할까지 일부 맡도록 하는 방식이다. 미소지기 근무 시간도 기존 대비 약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CJ CGV의 구독패스가 실제로 국내에서 성공할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 영화 산업은 티켓 매출을 극장과 배급·제작사가 일정 비율로 나누는 구조다. 영화 관람료에서 영화발전기금(3%)과 부가가치세(10%) 등을 제외한 금액을 극장과 배급사가 나누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월 구독료 기반 모델이 도입될 경우 영화별 매출 정산 방식부터 새로 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일부 대형 배급사들은 구독제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등 주요 배급사들은 구독제 도입 시 기존 티켓 가격 구조와 수익 배분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유통 질서 변화도 변수다. 코로나 이후 극장 개봉과 OTT 공개 사이 간격이 크게 줄어들면서 관객들이 극장 대신 OTT 공개를 기다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극장 상영 이후 일정 기간 동안 다른 플랫폼 공개를 제한하는 홀드백(holdback)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프랑스의 경우 극장 개봉 이후 OTT 공개까지 상당한 기간을 두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극장 관람을 일정 부분 보호하는 구조다. 반면 국내 시장은 OTT 확산으로 유통 질서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극장 중심 구조가 약화됐다는 지적이 있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프랑스는 정부가 영화 산업을 문화 정책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고 극장 중심 유통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며 "한국은 OTT 영향력이 훨씬 커져 구독제가 도입되더라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CJ CGV 측은 "구독패스 도입에 대해선 정부와 논의 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안은 없다"며 "코로나 이후 극장 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정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대인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