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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3차 상법 개정안 시행 이후 지주사들의 자사주 대응이 엇갈리고 있다. SK㈜는 보유 자사주 대부분을 한 번에 소각하는 결단을 내린 반면, 롯데지주는 일부만 먼저 소각했다는 점이 비교되고 있는 상황이다.
같은 제도 변화 앞에서도 SK㈜는 방향을 선명하게 정했고, 롯데지주는 시간을 벌어둔 셈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SK㈜가 사실상 기준점을 높여놓으면서 롯데지주의 추가 소각 여부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SK㈜는 10일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1469만2601주와 우선주 1787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소각 예정 금액은 9일 종가 기준 4조8342억원이다. 회사가 보유한 자기주식 1798만2486주 가운데 임직원 보상용 328만8098주를 제외한 잔여 물량을 사실상 전량 소각하는 구조다.
반면 롯데지주는 보통주 524만5461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소각 규모는 1662억8111만원으로, 발행주식의 약 5% 수준이다. 회사는 이번 물량이 분할합병 과정에서 취득한 자기주식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자사주를 한 번에 정리하기보다는 우선 처리 가능한 물량부터 소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롯데지주 측은 "법규를 준수하며 단계적으로 소각을 진행중이다"라고 밝혔다.
두 회사의 차이는 단순한 규모 차이만은 아니다. SK㈜의 결정은 ‘남길 물량’과 ‘태울 물량’을 한 번에 정리해 자사주 정책의 큰 방향을 시장에 먼저 제시한 데 의미가 있다. 임직원 보상 목적 외에는 더 이상 자사주를 오래 들고 가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롯데지주는 이번에 일부만 소각하면서 향후 선택지를 남겨뒀다. 당장 법 시행에 맞춰 최소한의 대응은 했지만, 남은 물량을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처리할지는 추후 판단하겠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6일부터 시행된 3차 상법 개정안은 신규 취득 자사주를 취득일로부터 1년 안에 소각하도록 했고, 기존 보유 자사주도 시행일로부터 1년6개월 안에 원칙적으로 소각하도록 했다. 그동안 자사주가 우호지분 확보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이어진 만큼, 장기 보유 관행을 제도적으로 끊겠다는 취지다.
다만 임직원 보상이나 우리사주조합 출연, 신사업 추진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보유·처분 계획을 마련해 주주총회 승인을 받는 방식으로 예외를 인정했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남은 자사주를 모두 즉시 소각할 수도 있고, 일부는 소각하되 일부는 예외 사유를 붙여 주총 승인을 받는 방식도 가능하다.
그래서 시장은 지금 ‘누가 소각을 했느냐’보다 ‘누가 어떤 논리로 얼마나 남기느냐’를 더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SK㈜는 가장 단순하고 강한 해법을 택했고, 롯데지주는 단계적 대응 쪽으로 무게를 실은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롯데지주는 이번 소각 이후에도 20%가 넘는 자사주를 계속 보유하게 된다.
법상 유예기간이 1년 6개월 남아 있어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늦출 수만도 없다는 분석이 힘을 받고 있다. 정부가 자사주를 통한 지배력 보강 가능성을 문제 삼아 제도를 바꾼 상황에서, 자사주 비중이 높은 지주사가 소각 속도를 지나치게 늦출 경우 시장의 시선이 더 날카로워질 수 있어서다.
여기에 SK㈜의 전량 소각 결정은 롯데지주에는 추가적인 부담 요인이다. 같은 지주사이자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이 먼저 대규모 소각에 나서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선 자연스럽게 비교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롯데 입장에서는 당장 법에 쫓겨 급하게 전량 소각을 할 필요는 없지만, SK가 기준을 높여놓은 이상 기존처럼 시간을 두고 보겠다는 태도만으로는 시장을 설득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결국 주가 흐름과 주총 일정, 남은 자사주의 활용 명분을 보면서 추가 소각 카드를 단계적으로 꺼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롯데지주의 향후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남은 자사주를 추가로 순차 소각하는 방법이 있고, 임직원 보상이나 우리사주 등 예외 사유를 붙여 일부를 남기는 방법도 있다. 경영상 목적을 내세워 처분 계획을 짜는 시나리오도 가능하지만, 이 경우에는 명분과 절차를 훨씬 더 촘촘하게 갖춰야 한다. 단순 보유는 더 이상 쉽지 않고, 예외를 활용하더라도 시장의 검증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의 관심이 특히 SK㈜와 롯데지주에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중 무려 16조원에 달하는 자사주 소각 계획을 내놨다. 다만 사업회사들의 자사주 소각이 주주환원이나 자본정책의 연장선으로 읽히는 측면이 크다면, 지주사의 자사주 처리는 지배구조 문제와 더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SK㈜가 보유 자사주 대부분을 소각하며 기준점을 높여놓은 만큼, 이제 시장의 관심은 롯데지주가 남은 자사주를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정리할지에 모이고 있다. 이번 5% 소각이 단순한 시작에 그칠지, 아니면 SK㈜와는 다른 방식의 단계적 해법으로 이어질지가 지주사 자사주 전략의 다음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