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덕에 몸값 오르니…PEF의 상장사 투자는 역대급 '기근'
입력 2026.03.16 07:00

취재노트
수개월 전에 비해 치솟은 기업가치
매도자와 원매자 간극은 더욱 벌어져
규제 강화로 PEF 상장사 투자 올스톱'
상장사 인수 줄고, 상폐 시도는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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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코스피가 6000선을 넘나들며 단기간 내 빠르게 불어난 상장회사들의 몸값은 인수·합병(M&A) 거래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영권 또는 일부 지분을 팔아 현금을 마련하고 싶은 매도자와, 증시의 거품이 빠져 적정한 가격까지 도달하기만을 기다리는 원매자와의 간극은 더욱 벌어지고 있단 평가다.

    근래 상장회사의 지분 거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실적과 전망이 모두 뒷받침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앞으로 수 년 간 수주 걱정을 덜어낸 방산·에너지, 일부 인공지능(AI)·로봇 관련 몇몇 기업들을 제외하곤 다수의 상장회사 주가 상승은 한국 증시의 수급에 기댄 측면이 강하다.

    원매자들 입장에선 기업의 펀더멘털 변화는 거의 없는데 주가 급등 때문에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긴 어렵다. 증시의 변동폭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에서 리스크를 짊어질만큼 기업 인수가 절박한 원매자들도 드문 게 사실이다.

    한국 자본시장의 주요 축인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운신 폭이 줄어들었단 점은 상장회사 지분거래가 줄어든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다.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신청 사태 이후 PEF 옥죄기 법안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졌다. 이미 시행된 법안들 외에도 경영권 지분 거래시 공개매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법안, 차입 규제, 의무보유 기간 신설 등 PEF업계에서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규제들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채비를 하고 있다.

    국내 한 PEF 대표급 관계자(A)는 "상장회사의 거래는 사실상 20~30% 수준에 달하는 대주주 지분 거래가 대부분인데,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가격에 공개매수를 실시하면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며 "당장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법제화하진 않았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법안이 통과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딜 검토 단계부터 상장사는 아예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장회사의 투자금회수(엑시트) 방안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현시점에서 PEF가 상장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면 짧게는 2~3년, 길게는 7~8년 후 엑시트에 나서야 하는데 규제 신설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단 지적도 나온다. 과거엔 알짜 사업부를 분할한 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 일부를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이 유효했지만, 현재로선 중복 상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주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단 점도 부담이다. 상장회사의 지분을 보유한 운용사들은 파트너급 인사를 비상무이사 등의 형식으로 파견해 관리한다. 상법개정으로 인해 이사진의 충실 의무 대상이 기업에서 주주로 확대하면서, 이사진에 포함된 인사들의 소송 리스크가 커지게 됐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새로운 사외이사를 영입하는 게 점차 어려워지고 있단 점도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현 정부의 기조가 증시 부양, 기업의 밸류업에 확실히 초점이 맞춰진만큼 주주환원에 대한 목소리는 점차 커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론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시를 의무화하는 제도가 신설될 가능성이 높은데, 대주주 입장에선 적극적인 주주환원 등으로 투자자들을 유인해야 하는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PEF 운용사 한 임원급 관계자(B)는 "PEF가 가장 선호하는 기업은 실적이 점진적으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비교적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통해 배당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업이다"며 "주가부양을 위해 자금을 투입하고, 배당을 늘려 나머지 주주들에게 나눠준다고 가정하면 상장회사를 굳이 인수할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 PEF 운용사가 보유한 포트폴리오 기업들이 공개매수 등의 과정을 거쳐 상장폐지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 루트로닉, 쌍용C&E, 제이시스메디칼, 비즈니스온 등이 공개매수를 거쳐 상장폐지를 완료했고, 나우코스, 에코마케팅, 더존비즈온 등은 PEF 주도로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앞으론 이 같은 움직임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국내 PEF 운용사 대표(C)는 "씨가 말라있단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현재는 상장회사의 신규 M&A거래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주주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운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할수록 PEF들의 포트폴리오 기업 상장폐지 움직임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