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비' 공모 완주 가능할까...'캐즘' 속 전기차 인프라 IPO 시험대
입력 2026.03.16 07:00

충전 인프라 기업 채비, 코스닥 상장 절차 돌입
전기차 시장 둔화 속 관련 기업 IPO도 잇따라 제동
해외 충전기업 멀티플 적용해 7000억대 몸값 제시
"전기차 업황 불확실한데 밸류는 높다"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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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전기차 충전 인프라 기업 '채비'가 본격적인 기업공개(IPO) 공모 절차에 착수했다. 채비 자체로는 높은 체급의 기업이 아니지만, 한때 신규 성장 섹터로 관심을 모았던 전기차 관련 인프라 기업의 사실상 첫 상장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다.

    전기차 산업이 전반적으로 캐즘(Chasm;신기술의 수요 정체 및 후퇴)를 맞이하며 투자 축소와 구조조정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채비의 공모 완주가 가능한지, 또 시장의 반응은 어떨지가 관심사로 꼽힌다. 

    채비는 지난달 27일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 예비심사 승인을 받은 뒤 이달 4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코스닥 상장을 본격화했다. 이익미실현 특례(테슬라 요건)를 적용해 상장하며 희망 공모가 기준 예상 시가총액은 약 5867억~7297억원이다.

    전기차 충전사업 기업이 직접 IPO에 나서는 사례는 국내에서 사실상 처음이다. 전기차 산업 성장 기대가 높던 시기에는 관련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을 추진했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LS그룹의 충전 인프라 기업 LS이링크는 상장 예비심사 청구를 자진 철회했고 전기차 부품사 LS EV 코리아 역시 상장이 무산됐다.

    시장에서는 채비가 사실상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 외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채비는 이미 시리즈C까지 투자를 유치했고 스틱인베스트먼트와 KB자산운용 등 재무적 투자자(FI)의 엑시트도 필요한 시점이다.

    스틱인베스트먼트와 KB자산운용은 각각 지분 26.7%, 13.8%를 보유해 2대 주주와 3대 주주에 올라 있다. 이번 공모는 전량 신주 모집이지만 상장 이후 FI들이 주식을 매도하며 투자금 회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채비가 두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당시 기업가치는 약 46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채비는 FI들의 투자 단가와 초기 투자 당시 전기차 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감안하면 한때 1조원 안팎의 기업가치가 거론되기도 했다. 다만 현재 공모가 밴드 역시 비싸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채비는 기업가치 산정을 위해 해외 전기차 충전 인프라 기업을 피어그룹으로 제시했다. 국내에서는 동종 상장사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패스트네드(Fastned BV), 청도 특예덕전기(Qingdao TGOOD Electric Co), 심천 시네셀 일렉트릭(Shenzhen Sinexcel Electric), 잡텍(Zaptec ASA) 등 해외 기업 4곳을 선정한 뒤 이들 기업의 평균 EV/EBITDA 배수 21.4배에 채비의 2028년 추정 EBITDA 755억원을 적용해 기업가치를 산출했다.

    채비의 사업 구조는 충전소 운영과 충전기 제조가 양대 축이다. 매출 비중은 충전소 운영이 약 60%대 후반, 충전기 제조가 약 30%대 초반을 차지한다.

    시장에서는 채비의 사업 모델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충전 인프라는 기술 장벽이 높은 산업이라기보다 설비 설치 사업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시장 경쟁도 치열하다. SK그룹 계열 충전사업자 SK일렉링크와 롯데이노베이트 계열 이브이시스 등 대기업 계열사들도 시장에 진입해 있다. 두 회사 역시 적자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SK일렉링크는 충전소 운영이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브이시스는 충전기 제조 비중이 약 67% 수준이다.

    채비 역시 매출은 늘었지만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채비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약 85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0% 증가했지만 영업손실은 확대됐다. 영업손실은 2022년 139억원에서 2023년 263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도 약 276억원을 기록했다. 누적 결손금은 1554억원 수준이다.

    전기차 충전 사업은 초기 충전기 설치와 전력 인입 공사, 부지 확보 등 자본적 지출(CAPEX)이 큰 설비 투자 산업이다. 충전기 이용률이 안정적으로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구조여서 초기 수익성이 낮을 수밖에 없지만, 실제 흑자전환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늘어나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근본적으로 전기차 산업 자체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변수라고 지적한다.

    최근 전기차 산업에서는 전략을 수정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포드와 체결했던 약 10조원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해지했고 스텔란티스와 설립한 배터리 합작법인(JV) 운영 구조도 변경했다. SK온 역시 포드와의 합작사 블루오벌SK 구조를 재조정하며 생산 전략을 수정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 둔화를 '캐즘'으로 설명하지 않은지 꽤 됐다"며 "캐즘은 신기술이 처음 시장에 등장했을 때 일시적인 수요 공백을 의미하는데 지금 둔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산업 자체가 재편되는 단계에 가깝다"고 말했다.

    글로벌 전기차 충전 기업들의 주가 흐름 역시 부진하다. 전기차 충전 솔루션 기업 EVgo는 최근 1년간 약 12%, 3년간 약 62% 하락했다. 충전 네트워크 사업자인 차지포인트홀딩스 역시 같은 기간 약 60%, 97% 가까이 주가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공모에 나선 만큼 기관투자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관건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기관들 사이에서 채비의 밸류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충전 인프라 사업은 개별 기업이 독점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라 성장성을 어떻게 증명할지가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