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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의결권 행사 일부를 민간 위탁운용사에 맡기는 방안을 시범적으로 검토하면서 국내 의결권 자문시장 확대 가능성에 업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제도화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시범 운영을 거쳐 방향을 결정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만큼, 향후 의결권 판단 과정에서 외부 자문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5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위탁운용사의 수탁자 책임활동을 강화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일부 책임투자형 위탁운용사를 대상으로 의결권 행사 역할을 확대하는 방안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평가 결과를 토대로 향후 제도 방향을 검토하겠다는 취지다.
시장에서는 제도 자체보다 그 이후의 구조 변화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처럼 장기간 자체 스튜어드십 체계를 운영해온 기관과 달리 상당수 민간 운용사는 의결권 행사 경험이나 전담 조직이 제한적이다. 위탁운용사의 역할이 넓어질수록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외부 분석이나 자문을 활용하려는 수요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기관투자가들도 이미 일정 부분 외부 자문을 활용하고 있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주주활동이나 의결권 판단 과정에서 ESG 연구기관이나 자문기관 의견을 참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며 "의결권 판단 주체가 넓어지면 이런 기관들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글로벌 의결권 자문시장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가 양분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국내 상장사 주주총회에서도 두 기관의 권고가 주요 변수로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국내 기관투자가 중심의 의결권 판단 수요가 늘어날 경우 기회가 글로벌 자문사에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제도와 상법, 주주총회 관행 등을 반영한 분석 수요가 늘어날수록 국내 자문사나 지배구조 전문 조직의 역할도 확대될 수 있다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자문사는 외국인 투자자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지만 국내 기관투자가 중심의 의결권 분석 수요까지 모두 담당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라며 "제도 변화가 현실화되면 국내 플레이어에게도 기회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의결권 자문 시장은 서스틴베스트를 비롯해 한국ESG기준원, 한국ESG연구소, 아주기업경영연구소 등 소수 기관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다만 시장 확대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법무법인과 연구조직 등 다양한 플레이어가 물밑에서 관련 시장 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통적으로 법무법인은 기업 측에서 주주총회 대응 전략을 설계하거나 행동주의 펀드 대응, 지배구조 개편 자문 등을 맡아온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과 주주활동 증가로 지배구조 분석과 주주총회 대응 수요가 늘어나면서 로펌들도 관련 시장을 새로운 사업 기회로 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법률 자문에 더해 지배구조 분석과 투자자 커뮤니케이션 전략까지 결합한 서비스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관련 시장을 겨냥한 조직 신설과 업무협약도 이어지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은 최근 기업지배구조 전략센터 산하에 '기업지배구조연구소'를 출범시키고 기관투자가 및 의결권 자문 대응 전략, 지배구조 개선 자문 등을 강화하고 있다. 주주총회 대응과 투자자 커뮤니케이션, ESG 이슈 분석 등을 결합한 서비스 확대를 염두에 둔 조직으로 평가된다.
법무법인 디엘지 역시 지난해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 얼라이언스 어드바이저스(Alliance Advisors)와 업무협약을 맺고 기업지배구조와 의결권 자문 분야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주총회 대응 전략과 ESG 이슈 분석, 투자자 커뮤니케이션 자문 등을 공동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의 시범 운영 결과에 따라 의결권 자문시장 성장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다만 위탁운용사의 수탁자 책임활동이 강화되는 방향이 유지될 경우 관련 분석과 자문 수요는 점진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아직 제도 방향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의결권 판단 구조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시장에서 필요한 분석과 자문 수요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며 "중장기적으로 국내 의결권 자문시장 판 자체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