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둘러싼 방산업계 움직임이 바쁘다. 한화그룹이 지분을 매입한 데 이어, LIG넥스원도 인수 가능성을 열어두고 내부 검토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항공체계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수면 위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공시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KAI 지분 4.99%(486만4000주)를 확보했다. 앞서 한화시스템도 KAI 지분 0.58%(56만6635주)를 약 599억원에 취득한 바 있다. 한화그룹이 KAI 지분을 다시 사들인 것은 2018년 전량 처분 이후 약 7년 만이다.
시장에선 시너지가 기대된다는 평가와 함께 단순 투자로 보긴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분 5%에 육박하는 규모를 확보하는 데 수천억원이 투입된 만큼 전략적 판단이 반영됐다는 시각이다. 향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LIG넥스원 역시 내부 TF를 통해 인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AI의 민영화 필요성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방산 수출이 본격화하는 국면에서 공기업 성격의 지배구조가 성장 속도를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로서 경영에 적극 관여하지 않는 구조가 한계로 지목돼 왔다.
시기의 문제는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방산업계의 관심은 지상 무기체계에 집중돼 있었다. 이미 개발된 무기체계 중심 수요가 확대되며 수출이 빠르게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공체계는 개발 기간이 길고 수익성이 제한적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매각 가능성이 재점화할 때마다 한화그룹과 LIG넥스원이 관심을 보일 것이란 목소리는 많았지만, 실제 기업들의 지분 매입 등 적극적인 행동은 관측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항공우주 산업 전반에 대한 시장 관심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글로벌 우주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밸류체인 전반이 재조명됐다. 중동 분쟁을 계기로 드론 등 항공 기반 무기체계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국내에서도 위성, 무인기 등 항공우주 분야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상 방산 중심의 경쟁력을 확보한 국내 업체들로선 항공 분야 확장에 눈독을 들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체계종합 역량을 보유한 KAI의 전략적 가치가 다시 부각되는 모습이다. 인수 주체에 따라 방산업계 판도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화는 육·해·공을 아우르는 통합형 방산 포트폴리오 구축을 추진해 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항공엔진, 항공전자, 레이더, 우주 발사체 등 핵심 역량도 확보했다. 다만 완제기 플랫폼은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KAI를 확보할 경우 체계종합 역량이 더해진다. 양사는 엔진 국산화, 무인기, 우주 사업 등을 포함한 협력 양해각서(MOU)도 체결한 상태다. 한화그룹은 방산 투자 확대를 위해 계열사 간 자금 재배치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한화가 KAI를 확보할 경우 글로벌 방산업체와의 경쟁 구도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록히드마틴은 항공 중심 구조인 반면 한화그룹은 지상과 해양, 항공까지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된다는 점에서다.
결국 이번 지분 매입은 선택지를 넓힌 투자로 평가된다. 인수로 이어질 경우 체급을 키울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주요 주주로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KAI의 수주 확대 기대를 감안하면 투자 측면에서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단 분석이다.
LIG넥스원의 대응은 변수다. LIG넥스원 역시 수년 전부터 KAI 인수 가능성을 타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도무기 체계에 체계종합 역량을 확보해 시너지를 내고 싶단 평가다. KAI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만큼 사업적 접점도 적지 않다.
LIG넥스원은 KAI 매각이 가시화할 경우 인수전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한화가 KAI를 확보할 경우 향후 입찰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천궁, L-SAM 등 주요 방공체계는 한화가 일부 핵심 구성품을, LIG넥스원이 체계종합을 맡는 구조다. 다만 한화가 레이더와 유도무기 등의 기술을 그룹 내에서 일부 내재화하며 기존 역할 분담에도 변화 조짐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그룹이 체계종합 기능까지 흡수할 경우, 향후 LIG넥스원의 역할이 더욱 축소 될 수 있단 관측이다.
결국 KAI를 둘러싼 경쟁은 방위 산업 내 주도권 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누가 확보하느냐에 따라 향후 수출 경쟁력과 사업 구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에 시선이 쏠린다. 최대주주인 수출입은행이 지분 매각에 나설 경우 민영화 논의는 본격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