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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KB금융그룹이 생산적금융 확대 국면에서 반도체 인프라 투자에 가장 먼저 보폭을 넓히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집단에너지 사업의 공동 주선사로 참여한 데 이어, 자체 조성한 1조원 규모 인프라펀드 가운데 절반인 5000억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권 안팎에서는 KB금융이 반도체 인프라에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생산적금융 확대 흐름 속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반도체 인프라 축을 선점하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은 산업은행과 함께 약 3조원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 금융주선을 맡고 있다.
KB금융지주는 별도로 그룹 차원의 인프라펀드를 통해 추가 투자까지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평택 삼성전자 부지 전력 및 스팀 공급 인프라 사업 역시 KB금융이 주관을 맡으면서, 반도체 인프라 전반에 걸친 관여도가 높아지고 있다.
KB의 행보는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주선 및 자기자금(PI) 투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주선사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자체 자금을 함께 투입하는 구조는 금융그룹 입장에서 리스크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동시에 핵심 인프라 딜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금융권에서는 KB금융의 행보를 두고 기존에 진행하던 인프라 딜과 정책금융이 맞물린 결과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신안우이 해상풍력 사업 역시 KB금융이 선제적으로 구조를 짜던 딜에 국민성장펀드가 후행 결합한 사례로 거론된다. 용인 클러스터와 평택 인프라 사업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KB금융이 원래 주선하던 인프라 딜들에 국민성장펀드가 들어오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반도체와 에너지 인프라 쪽에서 KB금융의 노출도가 높아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지주들의 분위기는 다소 신중하다. 생산적금융 확대 기조에는 공감하면서도, 아직 국민성장펀드의 밑단 투자 구조와 수익 및 위험 배분 조건이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만큼 속도 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실제 삼성전자 평택 P5 투자에도 주요 시중은행들이 1000억원 안팎씩 참여하는 구조가 논의되고 있지만, 이를 넘어서는 대규모 집행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가 이어지고 있다.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용인 클러스터 같은 경우도 KB금융이 주선사라 먼저 움직이는 것일 뿐, 구조가 정리되면 다른 은행들도 1000억원 단위로는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선제적으로 들어가느냐, 조건을 보고 들어가느냐의 차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지주 간 온도차가 나타나는 배경에는 생산적금융의 구조적 특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적금융은 첨단 전략산업과 인프라, 혁신기업에 자금을 공급한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금융그룹 입장에서는 대규모 자금을 한 번에 집행하면서도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자산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인프라는 이러한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꼽힌다. 정책적 상징성이 크고, 수조원 단위 자금 집행이 가능하며, 프로젝트 구조가 비교적 명확하다는 점에서다. 용인 클러스터나 평택 반도체 공장과 같은 사업은 국가 전략산업 지원이라는 명분과 함께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갖추고 있어 금융권 입장에서도 접근이 용이한 자산으로 평가된다.
반면 중소·혁신기업에 대한 직접 금융 지원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재무 기반이 약한 기업에 대한 대규모 자금 공급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러한 영역은 산업은행이나 IBK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더 적합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앞선 금융지주 관계자는 "반도체 같은 대형 인프라 투자는 정책 상징성도 크고 구조도 명확하지만, 결국 금융사 입장에서는 수익을 내야 한다"며 "돈은 벤처나 다른 기업투자에서 벌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현재 생산적금융은 취지와 실제 집행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시장은 KB금융의 선제적 행보가 생산적금융의 대표 모델로 자리 잡을지 주목하고 있다. 국민성장펀드 구조가 확정된 이후 다른 금융지주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참여하며 보다 균형 잡힌 투자 흐름이 형성될지도 관심사다.
현재 반도체 인프라 중심으로 형성된 투자 구도가 생산적금융 전반으로 확산될지, 아니면 특정 섹터 쏠림으로 이어질지는 향후 집행 과정에 달려 있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