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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은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과점 구조다. 두 대형사와 그 외 자산운용사 간 점유율 격차는 수년째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중·소형 운용사와 신생 하우스들이 잇따라 ETF 조직 확대와 인력 영입에 나서고 있다. 단기 수익성보다는 중장기 성장 산업으로서 ETF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17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대형사 ETF 운용역은 중소형 운용사 두 곳 이상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았다. 통상 성과급 시즌인 3월 전후로 포지션 제안이 늘어나는 경향은 있지만, "예년보다 제안 빈도와 조건이 확연히 많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단순히 운용역뿐 아니라 상품·전략·마케팅 실무자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중소형 하우스는 특정 테마 ETF 개발에 대한 전권 부여를 조건으로 운용역 영입을 제안하는 등 보다 공격적인 스카우트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사업 확장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액티브 ETF 운용 성과를 바탕으로 인지도를 높여온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지난해 삼성자산운용 등 대형사 출신 매니저를 영입한 데 이어 홍보 조직을 신설하며 ETF 사업 경쟁력을 강화했다.
일부 신생 운용사들도 ETF 전담 인력을 충원하며 조직 확대에 나섰다. DS자산운용 역시 ETF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고 ETF운용팀을 신설해 인력을 확충 중이다. 이달 정성인 전 키움투자자산운용 ETF사업부장 합류를 시작으로 리테일 시장으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중소형 운용사들이 대형사 출신 인력 확보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단순한 '스타 매니저' 영입 이상의 의도가 있다. 대형사에서 축적된 상품 구조화 역량과 리스크 관리 체계, 증권사·기관 네트워크를 빠르게 이식하려는 전략이다.
ETF는 시스템 산업에 가깝다는 점에서 인력 한 명이 아니라 조직 운영 방식과 프로세스를 함께 들여오는 효과를 기대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코스닥 액티브 ETF 등 일부 상품이 시장의 주목을 받으면서 액티브 ETF 비중 확대 흐름도 가속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운용 역량 차별화의 중요성 역시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것은 시장 규모의 급팽창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ETF 순자산총액은 2024년 말 173조5639억원에서 지난해 말 297조1401억원으로 1년 새 120조원 이상 늘었다. 지난 1월5일 종가 기준 처음으로 300조원을 돌파했고, 두 달 만에 377조3989억원까지 확대돼 '400조 시장'을 목전에 두고 있다.
두 대형사의 과점 구조는 유지되고 있지만, 파이 자체가 빠르게 커지면서 후발 주자에도 일정한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다. 유동성공급자(LP) 네트워크와 판매 채널,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 'KODEX'와 'TIGER' 브랜드를 앞세운 대형사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다만 시장이 연 단위로 수십조원씩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3~5% 수준의 점유율만 확보해도 하우스 전체 수익 구조와 브랜드 가치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 개인 투자자 비중 확대에 따라 테마·수익률 중심의 차별화 전략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중소형사에는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미래에셋 등 대형사 운용역 입장에서도 중소형사는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로 거론된다. 상위 직급으로 갈수록 승진 경쟁이 치열하고, 대형사 특유의 세분화된 업무 분장이 운용역의 재량 범위를 제한한다는 내부 불만이 나온다. 점유율 경쟁이 치열한 조직 문화 역시 실무자들에게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다. 반면 중소형 운용사는 상품 기획과 운용 의사결정 권한이 상대적으로 넓고, 성과 연동 보상 체계도 유연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정부의 액티브 ETF 규제 개편 움직임도 또 하나의 변수다. 금융당국이 액티브 ETF의 상관계수 요건 완화 등을 검토하고 있어 향후 운용 능력에 따른 성과 차별화가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과점 구조가 단기간에 흔들리기는 어렵지만, 급성장 국면에서의 선제적 진입이 중소형 운용사의 중장기 위상을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과점 구조가 굳어졌다고는 하지만 ETF는 여전히 성장 산업"이라며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는 지금이 중소형사 입장에선 시장 파이를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