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p가 아쉬운데…' 시중은행, '국민성장펀드' 저리대출 압박에 울상
입력 2026.03.20 07:00

삼성 P5 저리대출 '상징적' 참여였는데
실적 부진에 저리대출 확대 주문하는 정부
저리대출 찾는 대기업·중견기업 '줄서기'
조달원가 다른데…시중은행 역마진 '울상'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성장펀드를 둘러싼 정책금융 확대 기조 속에서 시중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초 정책금융기관 중심으로 설계됐던 기업 저리대출 사업에 시중은행 참여 비중이 확대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은행권 내부에서는 수익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기존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공급 예정인 저리대출의 상당 부분은 첨단전략산업기금이 담당하는 구조였다. 시중은행들은 국민성장펀드 2호 투자처인 삼성전자 평택 5공장(P5)과 같은 상징적인 프로젝트에 한해 제한적으로 저리대출에 참여하고, 산업은행이 대부분을 전담하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이 일부 국민성장펀드 저리대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배경 또한 산업은행이 저리대출 대부분을 취급할 경우 시중은행 문을 두드리는 기업고객들이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는 '시장 잠식'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대안에 지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시중은행을 통한 저리대출 확대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저리대출 수요가 대기업과 중견기업 가릴 것 없이 크게 늘어나면서 정부가 시중은행의 참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저리대출은 수요가 충분하고 비교적 손쉽게 취급할 수 있는 자산"이라며 "기존에는 정부가 전담하는 구조였다면 최근에는 시중은행도 함께 참여해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혜택을 주길 바라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 은행권은 다소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시중은행이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공급하는 저리대출은 첨단전략기금과 다소 높거나 유사한 수준의 금리로 집행되는데, 이 경우 수익성 부담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 P5 관련 저리대출의 경우 첨단전략기금이 국고채 수준으로 2조원을, 5대 시중은행이 연 3%대 저금리로 각각 약 1000억원씩 5000억원의 자금을 5년 동안 공급하는 구조로 짜여졌다.

    은행권 내부에서는 삼성전자 P5 프로젝트에 적용된 금리가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초우량 신용도를 고려할 경우 삼성전자 역시 시장에서 유사한 수준의 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 같은 저리대출이 중견기업으로 확대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기존 대출 금리 대비 상당 폭 낮은 수준으로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 만큼, 조달 원가를 감안하면 시중은행의 수익성 부담이 크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은행권에선 정부가 조달 원가 대비 높으면 괜찮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은행들은 이처럼 정부가 '찍어 주는' 금리로 저리대출이 나가게 될 경우 충당금이나 인건비, 관리비 등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남는 게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국민성장펀드 저리대출에 어느 정도까지 참여해야 하는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출범 당시만 해도 산업은행의 저리대출 독식에 따른 '시장 잠식'을 경계했다면, 최근에는 정부가 시중은행의 적극적인 저리대출 참여를 유도하면서 '낮은 금리' 자체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형국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은 정책 목적에 맞는 지원성 대출을 맡고, 시중은행은 내부 수익성 기준을 반영해 일정 수준의 금리를 확보하는 구조가 이상적이지만, 현재는 산업은행과 동일한 금리 조건으로 참여하라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국민성장펀드 실적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저리대출 확대는 거부하기 힘든 카드다. 그러나 저리대출 취급이 확대될 경우 시중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 지표에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해, 이를 메꾸기 위해 국민성장펀드 외 다른 기업대출이나 생산적금융 거래를 통해 보전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민성장펀드 본래의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당초 투자와 융자를 균형 있게 배분해 기업 성장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던 국민성장펀드 설계와 달리, 저리대출 중심으로 자금이 쏠릴 경우 기존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다른 한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는 기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대출뿐 아니라 투자 기능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지분 희석이 없는 저리대출을 선호할 수밖에 있지만, 수요가 많다고 해서 대출 위주로만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정책 취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