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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미국 어드밴스드마이크로디바이시스(AMD)의 최고경영자(CEO) 리사 수가 18일 한국을 찾아 삼성전자 수뇌부와 잇달아 만나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작년 체결된 삼성전자와 테슬라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협력 당시와 비교하면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에서 삼성전자의 달라진 위상이 엿보인다.
리사 수의 방한을 통해 삼성전자는 AMD와 차세대 AI 메모리·컴퓨팅 기술 분야 협력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해 범용 메모리 반도체까지 삼성전자 제품군 전반이 AMD의 차세대 가속기(GPU)나 AI 컴퓨팅 솔루션 플랫폼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AMD의 협력 역시 논의됐다.
리사 수의 이번 방한은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회의 'GTC 2026' 일정과 겹쳐 이뤄졌다. 여러모로 상징적 의미가 크다. 단순히 생산 파트너 삼성전자와의 협력 강화 차원을 넘어서는 의도가 읽힌다는 분석이 많다.
일단 AMD 사정이 그리 녹록지 않다. 지난 연말 기준 GPU 시장 점유율은 엔비디아가 90% 이상, AMD가 6~7% 수준으로 집계됐다. 엔비디아는 H100의 대성공 이후 사실상 독점 표준 지위를 굳혀가고 있고 AMD는 수년 동안 쓸만한 대안 정도의 포지션에 머무는 형국이다. 저렴한 비용구조나 메모리 효율을 앞세워 고객 저변을 넓히는 방식으로 엔비디아 독점의 빈틈을 파고드는 전략을 취해왔지만 판을 뒤집는 결과는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 엔비디아가 CUDA 플랫폼 록인(Lock-in)으로 구축한 해자가 워낙 견고하다 보니 격차를 쉽 좁히지 못하는 구도로 풀이된다.
GTC 행사 일정에 삼성전자를 찾은 것은 반도체 공급망까지 경쟁 전선에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로 읽힌다. 메모리 병목과 공급 부족, 공정 난이도 상승이 겹치면서 파운드리와 패키징까지 생산 전반이 AI 성능 경쟁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좋은 칩을 설계하고 더 많은 고객군을 확보하는 것 만큼이나 핵심 반도체를 적기에 확보하는 게 중요해지는 시기로 요약된다.
앞으로 AMD의 엔비디아 추격전에서 삼성전자가 키를 쥐고 있다는 판단 하에 전략적 방한에 나선 것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메모리부터 파운드리, 패키징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턴키(Turn-Key) 전략을 거론했을 당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많았는데, 시차를 두고 해당 전략이 재조명되는 과정으로 보인다"라며 "AI에 필요한 반도체 요구성능이 치솟고 공정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동시에 보유한 삼성전자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년간 AI 공급망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AI에 필요한 반도체 쓰임새는 해마다 다양해지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요구 성능은 치솟으면서 점점 메모리와 비메모리 간 결합도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HBM 역시 로직에 해당하는 베이스다이를 파운드리 공정으로 직접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가 주도권을 쥐게 됐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비메모리 설계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구조적 경쟁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턴키 방식으로 표현되는 수직계열화 구조가 AI 반도체 시대에 최적화한 생산 모델로 재평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삼성전자 파운드리와의 협력 소식을 깜짝 공개했을 당시와 비교하는 반응도 나온다.
당시만 해도 머스크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발언에 비춰 테슬라가 '밀어붙이기' 식으로 삼성전자와 협력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TSMC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2등 파운드리에 직접 개입해서 대안을 키워내겠다는 행보로 보였던 것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반도체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미국에 새로 짓는 파운드리가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해 천문학적인 손실을 낼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었다.
반면 리사 수가 방한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확실한 러브콜로 받아들여진다. 단순히 대안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서 전략적 가치가 차오르는 삼성전자의 공급 능력을 선점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는 얘기다. AI 주도권 경쟁에서 AMD와 테슬라의 위상 차이 역시 고려해야 하겠지만,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찾는 대형 고객사들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기도 하다. 엔비디아도 이번 GTC 2026을 통해 추론용 칩 '그록 3'를 삼성전자 파운드리 4나노 공정에서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메모리 경쟁력을 성공적으로 복원해낸 시점에 초호황(슈퍼사이클) 효과가 맞물리면서 파운드리 경쟁을 이어갈 수 있는 현금 동원력도 확보하게 됐고, 운때까지 맞아들어가는 분위기"라며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테슬라 협력이 돈은 안 될 거라는 불안감이 적지 않았었는데, 결국 고객 기반이 점점 풍성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업계에선 이번 삼성전자와 AMD의 협력을 기점으로 AI 경쟁의 축이 설계·성능 중심에서 생산·공급망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수직계열화 구조 역시 향후 주도권 경쟁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을 것이란 기대감이 차오른다.
그러나 TSMC와의 격차를 유의미하게 좁혀낸 단계로 보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고객사 풀과 수주 레퍼런스가 다양해지고 있지만, 파운드리 사업은 결국 수율과 양산 안정성, 수익성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추격전을 이어갈 수 있는 구도를 마련한 수준이고 향후 실제 양산 역량이나 수익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입증하는 것이 관건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