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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주가누르기 방지법'을 둘러싸고 자본시장 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가순자산비율(PBR)로 상장기업을 평가하는 방식이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장기 불황으로 인해 저평가된 기업의 경우 상속·증여세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비교적 PBR이 높은 기업에 대해선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금융투자업계와 국회에 따르면 최근 여당을 중심으로 '주가누르기 방지법'에 대한 보완 입법 준비가 한창이다. 작년 5월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토대로 실무적·법적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이다.
해당 개정안은 개인이 대주주인 상장사가 상속·증여 시 PBR 0.8배의 과세 하한선을 도입하도록 한다. 현재 상장주식 경우 상속·증여 시 가액을 평가할 때 기준일로부터 2개월간의 평균 시세를 적용한다. 비상장주식은 자산 및 수익 등을 고려해서 평가하되, 자산가치의 80%를 평가가액의 하한선으로 한다.
법안은 PBR이 0.8배 미만일 경우 상장주식에 대해서도 비상장주식과 마찬가지로 '순자산가치의 80%'를 하한선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소영 의원은 "경영권 승계작업이 이뤄지는 기업들의 경우 사업적 목적 외의 석연치 않은 계열사간 주식매매 및 유상증자, 합병, 분할 등을 통해 주가 저평가를 유도한다는 비판을 받는다"며 "한국시장에 PBR 1배 미만의 저평가 주식이 넘쳐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법안은 작년 5월 발의된 뒤 같은 해 11월 국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현재 조세소위원회에 계류됐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법 필요성을 언급하며 다시 화두에 올랐고, 이후 민주당은 상법 개정의 후속 과제로 제시했다.
금투업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코스피 상장 기업의 60%가 PBR 0.8배 미만이다. 전체 상장사 중 PBR 1배 미만인 기업은 70%에 달한다.
업계에선 현재 법안만으론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황 악화, 산업 구조적 한계로 주가가 낮은 기업들의 경우 보유 주식을 모두 처분해도 세금을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PBR이 0.3배이고 순자산가치가 100억원인 기업에 최고세율 60%가 적용되는 경우, 순자산가치 80%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상속·증여세는 48억원에 달한다. 주식을 모두 처분하더라도 가액이 30억원에 불과한데 세금이 자산 가치를 초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PBR이 하락하는 요인은 다양하다"며 "수익성이 악화되거나 성장성이 둔화된 제지·목재 등의 경우 PBR이 0.3~0.4배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PBR이라는 지표 자체의 한계도 지적된다. PBR의 분모인 순자산가치는 재무제표상 과거 기록인 반면, 분자인 주가는 미래 가치에 대한 시장의 판단이 반영된다. 두 수치 사이의 괴리를 단순히 '주가 조작'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법안이 의도치 않게 주가 하락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세 하한선인 0.8배까지 주가를 낮춰도 상관없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상장사 과세에 PBR을 직접 도입한 사례가 없다는 점도 신중론에 힘을 보탠다.
정부는 우선 시장 압력을 통한 자발적 체질 개선을 유도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7월부터 저PBR 기업 리스트를 KRX 밸류업 홈페이지에 상시 공표하고, 종목명에 별도의 태그(Flag)를 표출하는 '네이밍 앤 셰이밍(Naming & Shaming)'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주가 조작 방지라는 취지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만큼, 주가 산정 기간을 현행 2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거나 밸류업 성실 참여 기업에 상속세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보완 입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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