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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하이닉스가 막대한 현금을 단기 채권시장에 쏟아붓고 있다. 지난주에만 증권사 신탁을 통해 2조원 규모의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전단채)를 매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전체 매입 규모가 20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채권시장에서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효과보다 '반도체 머니'의 자금 집행을 더 현실적인 수급 변수로 주목하고 있다.
20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달 들어 2조원어치의 자금을 CP와 전단채 매입에 사용했다. 증권사 특정금전신탁과 랩어카운트를 활용해 투자를 진행했다. 매입 대상은 만기가 짧은 증권사 CP가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증권사 신탁을 통해 올해만 20조원 이상을 살 것이라고 들었다"며 "지난 2월부터 매입을 시작해 상반기 내내 자금 유입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단기 채권시장으로 눈을 돌린 배경에는 마땅한 운용처가 없다는 현실이 있다. 반도체 업황 호조로 벌어들인 자금을 환전까지 마친 상태지만, 시중은행들이 대규모 기업 예금을 받아주지 않으면서다. 은행 입장에서는 가계대출이 규제로 막히면서 운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단기 채권시장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말 연결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는 14조9237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말 7조5873억원에서 2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보유 현금 규모가 늘어날수록 자금 운용 고민도 커진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157조원으로 지난해 47조2063억원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시장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이 이르다는 시각이 많다. 자금 집행이 본격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약세를 강세로 전환하는 변곡점이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단기 크레디트물에 대한 강세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한 관계자는 "단기 크레디트물에 크게 영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하루이틀 정도 잠깐 세지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래도 단기물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며 "올해 내내 매입이 이어질 경우 수급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금 집행 과정이 빠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요인이다. 삼성전자 역시 대규모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내부 의사결정 구조상 자금 집행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의사결정이 나면 곧바로 자금 집행이 이뤄진다는 특징이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CP나 전단채 같은 단기물을 사는 주체가 워낙 없다 보니, 자금 규모가 크면 시장에 즉각 소문이 돈다"며 "'SK하이닉스가 샀구나' 하는 게 금방 알려진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WGBI 편입 효과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금 집행을 더 현실적인 수급 변수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앞의 관계자는 "WGBI는 오히려 실체를 모르겠고, 채권시장 전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자금만 기다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SK하이닉스발 자금 흐름을 거시적인 머니무브의 한 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개인 자금이 은행 예금과 새마을금고를 빠져나와 주식시장으로 향하는 반면, 기업 잉여자금은 단기 채권시장으로 흘러드는 양방향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자산 운용 방식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