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후 첫 주총 시즌...자사주 소각 ‘70~80% 룰’ 굳어지는 재계
입력 2026.03.23 07:00

삼성·SK·한화 등 80% 안팎 소각… ‘실질적 소각·일부 유지’ 전략 확산
개정 상법 압박 속 예외 조항 활용… 셀트리온 등 ‘투자 실탄’ 확보도
경영권 방어·재무 부담 겹친 기업들, 1년 6개월 유예기간 내 ‘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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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3차 상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된 후 맞이한 첫 정기 주주총회 시즌에 ‘자사주 소각’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삼성전자, SK㈜, ㈜한화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잇따라 보유 자사주 중 70~80% 수준의 소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하나의 '공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에 미치지 못하는 소각을 결정한 기업들은 주주들의 '눈총'을 받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재무 여건이 충분하지 않거나 자사주를 경영권 우호 지분으로 활용해야 하는 기업들은 유예기간을 활용하며 고심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행렬은 이번 정기주주총회 시즌에서 주목되는 사안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보유 자사주 1억 543만 주 중 82.5%에 달하는 8700만 주를 상반기 내 소각하기로 했다. 소각 규모는 약 16조원 수준이다.

    ㈜한화도 지난 11일 이사회를 통해 보유 자사주 558만 3253주 가운데 임직원 보상 재원(113만 2437주)을 제외한 445만 816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전체 보유 물량의 79.7% 규모다. SK㈜ 역시 지난 10일 이사회에서 보유 주식 1798만 2486주 중 임직원용 물량을 제외한 약 80%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이외에도 셀트리온, 한미그룹, KCC 등이 유사한 소각안을 밝히며 시장의 흐름에 동참했다.

  •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두고 새로운 자사주 처리 공식이 형성된 것으로 해석한다. 자사주 보유를 지양하는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춰 상당량을 소각하되, 경영상 불확실성에 대비해 20~30%가량의 물량은 남겨두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소각이라는 큰 방향성에 성의를 보이면서도, 향후 임직원 보상 등 활용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일부를 남겨놓는 추세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지난 6일 시행된 3차 상법 개정안이 있다. 개정안은 신규 자사주는 1년, 기존 물량은 1년 6개월 안에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못 박았다.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나 우호 지분 확보에 활용해온 오랜 관행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선전포고다.

    다만 임직원 보상이나 우리사주조합 출연, 신사업 추진 및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이 뚜렷한 경우에는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셀트리온의 경우 이러한 예외 조항을 활용해 자사주를 신규 투자 재원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셀트리온은 보유 자사주 중 74%에 해당하는 약 911만 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잔여 물량인 약 322만 주는 유동화해 약 6800억 원의 현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대규모 소각으로 정책 기조를 따르면서도 일부는 현금화해 투자 실탄을 확보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의 눈길은 이제 롯데지주와 HD현대로 쏠린다. 이들은 자사주 비중이 높지만, 동시에 그 자사주가 대주주의 핵심 우호 지분 역할을 하고 있어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롯데지주의 경우 신동빈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은 45%에 달하지만 개인 지분은 13% 수준에 불과해 20%가 넘는 자사주의 역할이 크다. HD현대 정기선 회장 역시 개인 지분율이 6.1% 수준이어서 약 10.5%의 자사주가 핵심 우호 지분으로 꼽힌다.

    이들 기업은 주어진 유예기간 1년 6개월을 최대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재무 여건이 악화된 기업의 경우 주가 추이를 살피며 소각 효과가 극대화되는 시점을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보유 자사주의 경영권 안정화 가치를 고려할 때 재무 여건이 탄탄한 기업들만이 소각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결국 기업별 재무 여력에 따라 자사주 소각 행보가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