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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블루아울에서 시작된 사모대출 환매 제한 이슈가 다른 운용사로 확산되면서 시장 전반의 긴장감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일부 운용사는 환매 한도를 설정하거나 자산 매각에 나서는 등 대응에 나섰고, 환매 요청 역시 전방위적으로 증가하는 흐름이다.
클리프워터는 환매 요청이 순자산의 두 자릿수 수준까지 몰리자 환매 한도를 제한했고, 블랙록과 모건스탠리 등 주요 운용사들도 유사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톤리지자산운용 역시 환매 요청 증가에 따라 일부만 지급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특정 운용사에 국한된 문제라고 생각됐던 환매 제한 사태가, 비상장 사모대출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세미 리퀴드 구조의 한계…환매 몰리자 드러난 '유동성 착시'
사모대출 시장에서 환매 이슈가 빠르게 확산되는 배경에는 상품 구조 자체가 자리 잡고 있다. 상장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는 투자자가 시장에서 지분을 매도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비상장 BDC는 환매 요청을 통해서만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비상장 BDC는 분기별 순자산의 5% 내외까지 환매를 허용하는 이른바 '세미 리퀴드(semi-liquid)' 구조로 개인 자금을 끌어모았다. 전통적인 사모펀드가 수년간 자금이 묶이는 구조인 것과 달리, 일정 수준의 환매를 보장함으로써 '언제든 일정 부분은 현금화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제공한 것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본질적으로 '제한된 유동성'이라는 점이다. 기초 자산인 기업대출은 대부분 만기가 길고 중간 매각이 쉽지 않은 비유동 자산인데, 투자자에게는 주기적인 환매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매 한도를 초과하는 요청이 들어올 경우 운용사는 게이트를 설정하거나 지급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결국 평상시에는 유동성이 있는 상품처럼 작동하지만, 환매가 집중되는 순간 유동성이 급격히 사라지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유동성을 일부 제공하는 구조가 오히려 완전한 비유동성보다 더 큰 착시를 낳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사태는 그 '유동성 착시'가 현실화된 사례로 해석된다.
상장·비상장 가격 괴리 확대…환매보다 더 큰 '가격 신뢰' 문제
다만 시장의 관심은 단순히 '환매가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단순히 '환매'보다 '가격'에서 찾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상장 BDC는 주가를 통해 시장의 불안을 빠르게 반영한다. 반면 비상장 사모대출 펀드는 내부 평가 모델에 기반한 순자산가치(NAV)를 유지하는 구조다. 이로 인해 동일한 자산군임에도 상장 상품은 NAV 대비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비상장 상품은 장부가를 유지하는 가격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괴리가 확대될수록 비상장 자산의 평가 적정성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괴리는 투자자 행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장부상 가격은 유지되는데 실제로는 환매가 제한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환매 요청이 늘고, 환매가 제한되면서 다시 불안이 확대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상품일수록 정보 비대칭이 크고, 가격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경우 환매가 급격히 몰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사모대출 시장의 급격한 성장 과정을 지목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은 2015년 5000억달러에서 2025년 2조달러를 넘어서며 빠르게 확대됐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 강화로 위험자산 대출이 위축되자,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이를 대체하면서 시장이 팽창했다.
문제는 자금 유입 속도에 맞춰 투자 기회가 충분히 확대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시장에 자금이 과도하게 유입되면서 대출 경쟁이 심화됐고, 차입자에 대한 언더라이팅 기준이 점차 완화됐다. 커버넌트(재무제한 조건)가 느슨해진 '커버넌트 라이트' 대출이 늘었고, 기업의 현금흐름이 부족해도 부도 처리를 유예하거나 구조를 변경해 연명시키는 사례도 증가했다.
특히 PIK(Payment-in-Kind) 구조의 확산은 시장이 주목하는 대표적인 리스크 요인이다. 이는 차입자가 현금 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경우 이자를 원금에 가산해 만기까지 이연하는 방식으로, 단기적으로는 부실을 가리지 않고 장부상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실이 누적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간 PIK 비중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점을 이번 사태의 잠재적 리스크로 보고 있다.
최근 불안을 키운 직접적인 요인은 소프트웨어 업종이다. 사모대출 시장에서 SaaS 기업은 반복 매출 구조를 기반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차입자로 평가돼 왔다. 실제로 주요 BDC 포트폴리오에서 소프트웨어 업종 비중은 10~20%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AI 확산으로 기존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해당 업종에 대한 리스크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일부 투자은행은 소프트웨어 기업 중심의 사모대출 부도율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으며, 해당 섹터에 대한 익스포저를 줄이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또 다른 리스크 요인으로는 다층적 레버리지 구조가 지목된다. 사모대출은 기본적으로 차입 기업 자체의 부채 위에, 펀드 차원의 차입(크레딧 퍼실리티), 그리고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구조화 상품(CLO 등)까지 얹히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구조는 개별 부실이 발생할 경우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 내 여러 단계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평가된다.
'붕괴'보다 '재평가'…운용사 간 격차 드러나는 국면
다만 이를 곧바로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도 많다. 사모대출은 산업과 차입자 구성이 분산돼 있어 특정 자산군이 동시에 붕괴하는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다.
오히려 미국의 일부 대형 운용사들은 이번 국면을 운용사와 자산 간 리스크 관리 역량 차이가 드러나는 '옥석가리기' 기회로 여기고 있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업력이 짧거나 공격적으로 자산을 확대한 운용사와, 보수적으로 운용해 온 대형 운용사 간 성과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국내 증권사와 보험사, 연기금의 사모대출 투자 규모는 30조원 후반대로 추정되지만, 주요 투자 대상이 글로벌 대형 운용사에 집중돼 있어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다만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신규 투자 집행 속도를 조절하고 기존 투자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는 등 보수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단순히 자산군 단위가 아니라 운용사별, 섹터별 리스크를 세분화해 점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이번 사모대출 이슈는 단순한 환매 확대를 넘어 자산 가격의 신뢰성과 유동성 구조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국내 대형 공제회 관계자는 "환매 이슈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가격이 실제 리스크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느냐의 문제"라며 "지금은 시장이 처음으로 사모대출 자산의 가격을 다시 점검하기 시작한 국면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