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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연금이 이제까지 직접 행사하던 주식 의결권을 민간 운용사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일단 기금운용본부 내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시범사업 추진 방안을 마련하겠단 계획이지만, 아직 확정하지 않은 사안임에도 운용업계엔 상당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위임 방안을 검토한건 꾸준히 제기된 관치금융 논란을 벗어냄과 동시에 수탁자 책임활동을 강화하겠단 취지였다. 해마다 자산배분 정책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기금의 운용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단 사실은 무시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스튜어드십코드가 언급될 때마다 '연금 사회주의' 또는 '관치금융'의 우려가 제기돼 왔는데,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민간 운용사들에 넘어가면, 표면적으론 연금의 영향력이 그만큼 줄어드는 효과로 보일 수 있다. 또 운용사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조치로도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운용사들은 오히려 더 부담스러운 상황을 초래할 것이란 걱정에 빠져있다.
국민연금은 현재도 일부 위탁자금에 대해선 운용사가 자율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의결권 위임 제도는 2020년 정기 주주총회 시즌부터 도입됐다. 초기엔 개별 운용사가 서면으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연금에 제출하는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지만, 지난 2022년부턴 전산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주식 비중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거나 ▲중대한 이슈가 발생한 기업의 주총에서 연금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게됐을 땐 국민연금이 직접 의결권 방향을 결정해 왔다. 2025년 기준 국민연금 국내주식 의결권 행사 기업 599곳 중 342곳은 직접 행사, 나머지 257곳은 위탁운용사가 행사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위탁 방식의 개편은 투자일임에서 펀드출자 방식으로 바꾸겠단 게 핵심이다. 고유 계정에 자금을 넣어 투자를 일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게 되면, 국민연금은 펀드의 출자자로 지위가 바뀌고 의결권의 명의 역시 국민연금이 아닌 운용사로 전환된다.
현재와 같은 방식에선 국민연금의 자금이 포함된 일임계좌에 대해서만 국민연금이 점검 권한을 갖는다. 운용사에 자금을 맡긴 다른 기관들 또는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포함된 투자상품에 대해선 국민연금이 감시할 권한이 없다.
위탁 방식이 펀드 출자로 변경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민연금이 신탁형식으로 자금을 맡기면, 운용사는 다른 신탁분을 모두 모아 주총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의결권 명의를 국민연금이 아닌 운용사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운용사들이 충실히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지, 또 자금을 효율적으로 잘 운용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기 위해선 점검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결국 국민연금이 운용사들을 점검하는 과정에선 운용사가 보유한 모든 신탁자산군을 들여다봐야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운용사 전체를 들여다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단 평가다.
스튜어드십코드를 강조하는 국민연금의 기조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미 상법 개정과 맞물려 의결권 행사 방향을 공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18일 자본시장 간담회에서도 운용전략실장이 직접 "상법개정 취지를 몰각하고 회피하는 시도가 눈에 띄는데, 여러 시도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시장과 소통하는데 신경 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로선 의결권을 넘겨 운용사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단 취지와 국민연금의 더 강력한 책임투자를 강조하는 기조가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운용사들은 연금의 위탁방식이 일임이든, 펀드출자든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르면 올 하반기 국민연금은 운용사들에 대한 스튜어드십코드 이행 점검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스튜어드십코드를 얼마나 잘 이행하고 있는지, 내부통제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등 이행점검에 따른 결과는 향후 운용사 선정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미 운용사들 사이에선 연금이 마련한 스튜어드십코드에 가장 잘 발맞추고 있는 운용사로 손꼽히기 위해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책임투자 기준을 연금과 동일하게 맞춘다거나, 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과 맞추기 위해 정보력을 동원하다든지 등 이미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한 물밑 작업에 한창이다.
국민연금이 자금줄과 평가표를 손에 쥔 상황에서 운용사들에 책임 투자를 강요하는 방식은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위탁 방식을 변경한다면 연금은 운용사에 자율성을 부여했단 '명분'을 챙기고, 민감한 사안에 슬쩍 뒤로 빠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순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운용사들에 가장 중요한 '쩐주(錢主)'의 지위를 갖고 고삐를 쥐는 권한을 갖게 되는데, 이 같은 방안이 과연 연금이 그토록 강조하는 스튜어드십코드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