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장에 밀린 예금성 자금…기관들, 출자 속도·규모 놓고 고민
입력 2026.03.25 07:00

정기예금·요구불예금 감소…증시 주변 자금은 360조원 확대
고금리 상품 출시해 대응하지만…주식 기대수익률엔 '한계'
신규 자금 유입 둔화…공제회·상호금융 등 투자재원 '흔들'
PE·VC·인프라 출자 전략 변화…속도·타이밍 조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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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AI 생성 이미지(편집)

    연초 증시 강세로 시중 자금이 빠르게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공제회와 상호금융권 등 예금성 자금 기반 기관들의 자금 운용 전략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자금이 대거 이탈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당초 유입이 기대됐던 신규 자금이 줄어들면서 일부 기관들은 대체투자 출자 속도와 규모를 놓고 내부 점검에 들어간 분위기다.

    실제 자금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2월 말 기준 약 946조8897억원으로 올해 들어서만 2조4132억원 가까이 줄었다. 요구불예금도 같은 기간 약 8조6000억원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증권사 투자자예탁금은 2026년 초 기준 10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고, CMA와 MMF 등을 포함한 증시 주변 자금은 약 360조원 규모까지 확대된 것으로 집계된다.

    은행권 창구를 통한 ETF 투자도 급증했다. 주요 시중은행에서 판매된 ETF 규모는 올해 1월과 2월에만 약 16조원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배가 넘게 커졌다. 저금리 환경 속에서 개인 자금이 예금에서 투자자산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한층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머니무브에 대응해 은행과 상호금융권은 최근 금리를 높인 예·적금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일부 상품은 연 4%대 금리를 제시하며 수신 경쟁에 나섰다. 4%대 금리 예금이 등장한 건 지난 2024년 말 이후 약 1년 3개월 만이다. 다만 주식시장 기대수익률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금리를 소폭 인상하는 방식으로는 자금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전망이 많다.

    이 같은 변화는 기관투자가들의 자금 조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자금이 빠져나간다기보다 들어와야 할 돈이 기대보다 덜 들어오는 상황"이라며 "연초 이후 자금 유입 흐름이 약해지면서 투자 재원을 보수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예금금리를 조금 올린다고 해서 주식으로 가려는 자금이 돌아오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예금과 주식 간 기대수익률 차이가 커진 상황에서는 금리 경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상호금융권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감지된다. 한 상호금융권 관계자는 "예탁금 증가 속도가 둔화되면서 당초 계획했던 대체투자 확대 방향을 일부 재점검하는 분위기"라며 "자금 여력이 불확실해지면 장기 자산부터 속도 조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자금 흐름이 바뀌면서 기관들의 투자 전략도 미묘하게 조정되고 있다. 특히 사모펀드(PE), 벤처캐피털(VC), 인프라 등 장기·비유동성 자산은 한 번 투자하면 회수까지 수년이 걸리는 구조인 만큼, 자금 유입의 가시성이 떨어질 경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제회나 상호금융권은 통상 연간 자금 유입 계획을 바탕으로 대체투자 출자 규모를 설정하는데, 최근처럼 신규 자금 유입이 둔화될 경우 기존 계획대로 장기 자산에 자금을 묶어두는 것이 유동성 관리 측면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부 기관에서는 연초 이후 자금 흐름을 반영해 연간 투자 재원을 재산정하거나, 대체투자와 유동성 자산 간 배분 비중을 다시 점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기관들은 당장 출자를 줄이기보다는 투자 '속도'와 '집행 시점'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신규 펀드 출자 약정을 유지하되 실제 자금 납입 타이밍을 늦추거나, 동일한 투자 규모 내에서도 PE·VC 등 장기 자산보다는 상대적으로 회전이 빠른 크레딧·유동성 자산 비중을 높이는 식이다. 일부 기관에서는 신규 운용사 선정(콘테스트)보다는 기존 운용사 재출자(리업) 중심으로 보수적인 접근을 검토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현 단계에서는 출자 자체를 급격히 축소하기보다는 '속도와 규모를 조정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장기투자는 특정 시점을 건너뛰면 오히려 전체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흔들릴 수 있어 빈티지 유지가 중요하다"라며 "다만 최근처럼 자금 유입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는 투자 타이밍과 배분을 보다 보수적으로 가져가려는 논의가 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흐름을 단순한 단기 자금 이동을 넘어 구조적 변화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과거에는 금리 수준에 따라 예금과 투자 간 자금 이동이 결정됐다면, 최근에는 ETF 확산과 투자 접근성 개선, 주식시장 기대수익률 상승이 맞물리며 개인 자금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금 중심이던 자산 배분 구조가 점차 투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라며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기관투자가들의 자금 조달 환경과 투자 전략에도 중장기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