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외치는 신평사, 속내는 '인건비 다이어트'
입력 2026.03.26 07:00

취재노트
글로벌 신평사는 AI에 수천억…국내 3사 "여건 안 돼"
"기술적으로 어디까지 활용 가능한지 테스트 단계"
AI 고도화 외치며 희망퇴직·권고사직 동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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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인공지능(AI)을 꺼내 들었다.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NICE)신용평가 등 신평 3사는 전사 차원에서 AI 계정을 활용해 업무 활용 범위를 테스트하고 있다.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내부 논의를 진행하는 곳도 있다.

    글로벌 신평사들은 AI를 핵심 업무에 내재화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앤트로픽과 손잡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폐쇄형 AI 인프라를 구축했다. 내부 테스트에서 리서치 시간을 최대 40% 단축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무디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전 직원 1만4000명에게 사내 전용 '무디스 코파일럿'을 배포했다. 이들이 AI에 수천억원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건 글로벌 시장 지배력과 그에 따른 매출 규모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국내 신평사들의 사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글로벌 기업과 단순한 체급 비교가 어렵다.

    신평사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개발하든 인수하든 시장이 되고 매출이 된다는 전제하에 투자가 이뤄진다"며 "AI 엔진 가격이 충분히 내려가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3사 모두 그만한 여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 자체 폐쇄형 AI 서버 구축은 검토 대상도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현재 3사의 접근 방식은 엇비슷하다. AI 계정 일부를 구매해 업무에서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실무적으로 테스트하는 단계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어디까지 활용 가능한지 테스트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된 건 없고, 해보자는 단계"라고 선을 그었다.

    한기평과 NICE신평은 AI 접목을 위해 초기 아이디어를 공유 중이며, 한신평도 관련 TF를 꾸려 내부 논의에 들어갔다. 한신평은 모회사인 무디스가 쓰고 있는 프로그램을 한국에도 도입해 보라는 권유로 자체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개별 애널리스트가 자체적으로 퍼블릭 AI를 활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전사적으로 도입해서 쓰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재 논의는 평가 보고서 초안 작성, 공시 데이터 요약, 리서치 보조 등 비핵심 업무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수준이다. 실제로는 리서치 홍보 강화 차원에서 AI를 활용한 숏폼, 인포그래픽, 카드뉴스 제작 등에서 활용 중이다. 평가 프로세스 자체에 AI를 개입시키는 문제는 기술적 검토와 별개로 금융당국과의 규제 문제 등 정무적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인식이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신평사들이 AI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비용이다.

    신평사 업무의 핵심은 애널리스트가 담당한다. 기업 공시를 읽고, 현장 관계자를 만나고, 리포트를 쓰고, 신용등급을 매기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사람 손을 탄다. 인건비가 고정비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다. 3사 모두 매출 성장이 막혀 있다. 평가 대상 기업 수는 정체돼 있고, 수수료 인상은 쉽지 않으며, 해외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매출은 제자리인데 인건비는 매년 오른다.

    AI가 공시 데이터 요약, 리포트 초안 작성, 이상 징후 탐지를 대신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사람이 덜 필요해진다. 신평사들이 AI에서 찾으려는 것이 혁신보다 비용 절감에 가깝다는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 압박이 일부 신평사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NICE신평은 지난 2월 만 55세 초과 실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희망 퇴직금은 월급 기준 30개월 치 수준이다. 

    표면적으로는 AI 고도화에 따른 효율적 인력 운영을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취임한 안영복 NICE신평 대표의 연말 연임을 앞두고 인건비 감축 실적이 내부 최우선 과제가 됐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권고사직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데, 권고사직을 거부한 직원에게 부서 이동, 직무 변경 등 후속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I를 내세우지만 정작 AI가 대체할 자리를 사람이 먼저 비워주고 있는 모양새다. 혁신의 언어를 빌렸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 국내 신평사의 AI 실험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낙관은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