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거래소(KRX)가 오는 9월 중순 '프리마켓(장 전 시간외 거래)' 오픈을 잠정 확정했다. 미국 등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맞추겠다는 취지다.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하는 증권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단순히 업무가 늘어나는 차원을 넘어, 거래소의 '오락가락' 행정이 초래할 투자자 혼란과 시스템적 과부하를 오롯이 증권사가 감내해야 하는 구조다.
가장 큰 문제는 제도 도입의 순서다. 거래소는 내년 말 프리마켓부터 정규장, 애프터마켓까지 주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원보드(One-Board) 시스템' 구축을 예정하고 있다. 업무의 편의성만 보면 주문 이연 시스템인 원보드를 먼저 완비한 후 프리마켓을 가동하는 편이 수월하다.
거래소는 일단 문부터 열고 보자는 식이다. 결국 증권사들은 올해 9월 프리마켓 오픈에 맞춰 시스템을 개발하고, 내년 말 원보드 도입 시점에 맞춰 다시 시스템을 조정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증권사가 우려하는 건 고객의 혼란이다. 증권사 대부분은 프리마켓 중 미체결된 주문을 정규장 오픈 전에 일괄 취소할 것으로 보인다. 프리마켓과 정규장을 별개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고, 거래소 주문을 이연할 경우 넥스트레이드 미지원 종목만 별개로 취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하지만 내년 말 원보드 시스템이 구축되면 다시 "이제는 정규장으로 이연된다"고 안내 방침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불과 1년 사이에 거래 가이드라인이 정반대로 뒤집히면서 투자자들의 불신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깊다.
ETF 시장도 문제다. 7시에 프리마켓이 열려도 정작 헤지 수단인 파생 시장은 열리지 않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물 주문은 들어오는데 파생 주문을 낼 수 없으니 운영 부담을 고스란히 증권사가 떠안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현장의 IT 인력은 이미 한계치다. 올해 상반기에만 대형 프로젝트가 줄줄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오늘(23일) 국내시장 복귀계좌(RIA) 오픈을 시작으로 4월 BDC 상품 출시, 4월과 6월 파생상품 제도 개선까지 잡혀 있다. 이미 확정된 제도 개편만으로도 숨이 가쁜 상황에서, 거래소의 '단계적 추진'이라는 명분 아래 불필요한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추가 과제도 예정됐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익일 결제(T+1) 시스템 도입은 증권사에 막대한 개발 공수를 요구하는 업무다. 종목별 증거금 체계, 대출 서비스 등 현재 시스템을 구석구석 뜯어 고쳐야 하는 탓에 증권업계는 벌써부터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글로벌 표준을 따르겠다는 취지 자체에는 대체로 무리가 없다. 문제는 시장 구성원들이 그 목표와 과정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꾸준한 소통 없이 일방적인 통보를 거듭하는 거래소의 고압적인 태도는 업계의 불만만 키우고 있다.
거래소는 올해 1월 증권사들에 거래시간 연장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당시 업계는 "준비에 최소 1년6개월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거래소는 이후 돌연 6월 개장을 발표했다가, 업계 간담회에선 8월로 물러섰다. 이후 다시 보도자료를 통해 9월로 정정하는 등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전 7시 개장'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미국이나 아시아권 기관 투자자들이 시차를 감수하며 오전 7시에 한국 시장에 실시간 참여할 요인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소의 지금 분위기를 보면 언제든지 개장시간을 더 당기거나 아예 8시로 늦춰 넥스트레이드와 맞추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며 "이런 문의를 해도 속시원히 대답하지 않고, 지금으로선 정해지지 않았다는 답변만 반복하니 업계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