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고비 넘긴 조원태 한진 회장…산업은행發 위기는 이제 시작
입력 2026.03.27 07:00

Invest Column
이미 조원태 회장에 등돌린 국민연금
아시아나 통합 후 지분 매각하겠단 산은
2026년은 통합 원년…점차 빨라지는 매각 시계
산은 떠나면 우호지분은 사실상 델타뿐
2대 주주 호반그룹의 지분 확대 추세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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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조원태 회장의 한진그룹 경영권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표면적으론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델타항공과 한국산업은행이 조 회장을 든든하게 지지하고 있는듯 보이지만, 산은 지분 매각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고 또 2대주주 호반그룹의 기세가 매섭다.

    26일 열린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에선 회사측이 제안한 안건이 모두 통과했다. 국민연금은 조원태 회장과 우기홍 부회장의 선임안건에 대해 각각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이사 선임을 저지하는데는 실패했다. 델타항공과 산업은행, 호반그룹은 조원태 회장 선임에 찬성표를 행사했다. 소액주주들 역시 조 회장에게 힘을 실었는데 올해 말 통합 대한항공 출범을 앞두고 경영의 안정성에 무게를 둔 투자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조원태 회장은 일단 경영권을 유지하는데는 성공했다. 다만 분쟁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 올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절차가 마무리되면,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지분을 계속 보유하고 있을 명분은 사라지게 된다.

    2018년 KCGI의 지분매집으로 발발한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2020년 산업은행의 유상증자로 일단락 됐다. 당시 산업은행은 지분 10%를 확보하며 주요주주로 등극했고, 투자계약에 따라 산은은 특수관계자로 이름을 올렸다.

    산은의 지원으로 조원태 회장은 경영권을 지켜낸 대신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이란 숙제를 받았다. 산은은 자금지원의 대가로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지명권 ▲한진그룹 계열사 주요경영사항에 대한 협의권 및 동의권 ▲대한항공 및 계열사 주식의 담보 제공, 처분 과정에서 사전 동의권 등을 가졌다. 한진칼은 부수적으로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경영평가위원회의 대한항공 경영평가 실시, 아시아나항공과 PMI 계획을 수립 등을 요구 받았다. 이 같은 사안을 강제하기 위해 조 회장은 보유 주식 전량을 담보로 제공했다.

    조 회장과 한진그룹의 명운을 쥐고 있는 산은의 대명제는 ‘통합 국적 항공사’의 출범이었다. 투자계약서에 드러나듯 산은은 애초부터 조 회장과 우호적인 관계도 아니었다. 다만 국적 항공사 아시아나를 살리겠단 명분, 딱 하나에서 한진그룹을 우회적으로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조 회장 역시 경영권 방어란 선물을 받게됐다.

    한진그룹에 대한 지원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하는 순간 끊길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산업은행은 두 항공사의 합병 이후 한진칼 지분 매각을 검토하겠단 입장을 국회 정무위원회에 전달했다.

    사실 산은이 한진칼 지분을 계속 보유할 실익도 크지 않다. 이미 3000억원 규모 교환사채(EB)는 상환을 받았고, 대출 일부와 주식만이 남아있다. 한진칼로부터 받는 배당은 연간 20억원 남짓, 사실상 5000억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이 한진칼에 계속 묶여있는 상황이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에 대한 압박이 커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현재가치로 산은이 지분을 매각하면 수천억원의 평가이익을 거둘 수 있다. 2020년 산은의 한진칼 신주 인수가격은 주당 7만800원, 현재의 주가는 약 12만원이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항공산업 구조조정의 명분과 공적자금의 성공적인 회수란 실익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셈이다. 

    델타항공과 더불어 조 회장의 방파제 역할을 하던 산업은행의 이탈을 가장 반길 곳은 2대주주인 호반그룹이 될 공산이 크다. 호반은 2022년 KCGI의 투자금회수(엑시트) 과정에서 한진칼 지분을 인수했고, 최근까지 꾸준히 주식을 사들이며 어느덧 지분율을 18.78%까지 끌어올렸다. 2022년에 호반은 한진칼의 지분을 팬오션에 매각한 이후, 10개월만에 다시 사들였는데 매각과 재매입을 진행하며 150억원이 넘는 추가비용을 지불했다. 사실상 역마진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한진칼 지분을 늘리겠단 강한 의지를 나타냈단 평가를 받았다.

    호반과 조 회장과의 지분율 격차는 단 1.8%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호반은 아직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다. 올해 주총에서도 조 회장 선임에 찬성표를 던졌고, 실제로 조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려는 뚜렷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호반그룹이 한진칼의 2대주주로 머물고 있는 배경을 경영권을 갖기 위한 목적 외엔 설명하기 어렵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세차익을 노리기 위한 수준으론 보기엔 이미 너무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있고, 배당 등을 통해 실질적인 수익을 목표로 하기엔 실익이 작다. 결국 통합 대한항공의 출범, 산은의 이탈이 가시화 하는 시점부턴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호반그룹의 김상열 회장의 두 아들에 대한 승계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국적항공사의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건 사세의 확장과 승계의 과정을 좀 더 매끄럽게 할 가능성이 높다.

    산은의 지분이 매물로 등장하게 되면 조 회장의 셈법은 복잡해지게 된다. 이미 국민연금은 등을 돌린 상태로, 다시금 우호지분으로 끌어오기엔 무리가 있다. 과거의 주주권익 침해에 대한 기록이 남은 이사진에게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는 사례는 드물다. 결국 조 회장에겐 델타항공 하나가 우군으로 남게되는데, 산은의 지분이 어느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경영권의 주인도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조원태 회장에 대한 국민연금이 거듭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결코 가볍게 보기 어렵다. 주주권 보호와 이사의 책임강화를 강조하는 있는 정부의 기조는 점차 강해지고 있고, 조 회장을 비호(?) 할 산은의 명분도 옅어졌다. 상법개정으로 3%룰이 의무화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2대주주는 언제든 이사회 진입을 시도할 수 있다. 전쟁과 유가급등 등 거스를 수 없는 대외 변수라 할지라도 실적이 흔들리면 우군이었던 주주들의 이탈이 가속화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조 회장에게 앞으로 남은 과제는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에 “왜 반드시 조원태 회장이 있어야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고 또 증명하는 일이다. 조원태 회장은 대를 이은 오너 경영인으로서 우리나라 항공업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인건 분명하다. 이는 조 회장이 반드시 한진그룹을 이끌어야하는 당위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조원태 회장, 우기홍 부회장 등 한진그룹을 대표하는 몇몇의 인물을 제외하면 한진그룹을 이끌어 갈 차세대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고민해봐야 한다. 과거 행동주의펀드가 집요하게 지적했던 부분 역시 오너에 집중된 권력과 독단적인 경영이었다.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항공=조원태’란 공식이 유효하고, 이미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기관들이 조 회장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은  경영권을 노리는 외부 세력들의 가장 좋은 명분이자 구실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