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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성장펀드의 성과를 보여주는 방식은 생각보다 선별적이다. 같은 펀드에서 나온 딜인데도 누구는 약정식까지 열고, 누구는 조용히 넘어간다. '1호' 신안우이 해상풍력은 내달 9일 대외 약정식까지 예정돼 있지만, 삼성전자 평택 P5 지원 건은 비슷한 행사 검토 단계에서 접힌 것으로 전해진다. 두 딜의 차이는 단순히 구조의 복잡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신안우이 해상풍력은 국민성장펀드의 첫 번째 메가프로젝트로 일찌감치 이름을 올린 사업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신안우이 해상풍력에 7500억원을 투입하는 안을 확정했고, 이 사업은 전남 신안 해역에 390MW 규모 해상풍력 단지를 조성하는 총사업비 3조4000억원대 프로젝트로 소개됐다. 이후 2월에는 KB국민은행과 산업은행이 공동 대표 금융주관사로 나서 2조8900억원 규모 선·후순위 대출 투자자 모집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형식만 놓고 보면 신안우이는 약정식까지 가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수 금융기관이 참여한 인프라 프로젝트이고, 장기 사업 특성상 자금 구조를 대외적으로 설명할 필요도 있다. 더구나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성장펀드가 '실제로 돈이 들어가는 사업'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번 약정식이 단순한 금융절차를 넘어 정책 성과를 가시화하는 자리로 읽히는 이유다.
흥미로운 건 삼성전자 P5다. 금융위는 2월 말 기금운용심의회를 열고 삼성전자 평택 P5 구축 프로젝트에 총 2조5000억원의 저리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첨단전략산업기금이 2조원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5000억원을 함께 대는 구조다.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평택 P5 1단계 설비투자 사업은 총 8조8000억원 규모로 알려졌고, 정책금융 차원에서는 상징성이 큰 지원안이었다.
첨단전략산업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상징성이 큰 딜이었고, 규모 역시 수조원대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다. 업계에서는 당초 이 딜이 당초 '1호'로 먼저 나올 가능성도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만 놓고 보면 오히려 P5 쪽이 더 단순한 카드였다. 인프라 프로젝트처럼 다층 구조를 설계할 필요 없이, 대출을 중심으로 자금을 집행하면 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금융주선이나 집행 속도 측면에서도 더 빠르게 '첫 사례'를 만들 수 있는 딜이었다는 평가다.
다만 당국에서 국민성장펀드가 대기업 대출 지원으로 비치는 데 대해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지면서, 삼성전자 P5는 '2호'로 밀리고 신안우이가 전면에 배치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딜은 별도의 대외 행사 없이 조용히 집행되는 방향으로 정리된 반면, 신안우이는 약정식을 통한 공식 행사까지 이어지게 됐다.
정책금융의 첫 장면을 삼성전자 대출로 내세울 경우 상징은 강하지만, 그만큼 프레임도 선명해진다. '첨단산업 지원'이라는 설명은 가능해도, 겉으로는 결국 초대형 대기업에 싼 금리로 돈을 넣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신안우이는 재생에너지·지역균형·전력 인프라라는 명분을 동시에 갖춘 반면, 삼성전자 P5는 아무래도 대기업 지원이라는 인상이 앞설 수밖에 없다.
결국 같은 국민성장펀드 안에서도 '보여줄 수 있는 딜'과 '조용히 집행할 딜'이 나뉘는 셈이다. 신안우이는 지역과 산업정책 서사를 붙이기 좋고, 삼성전자 P5는 지원 규모와 파급력은 크지만 정무적 부담이 크다. 산업은행이 신안우이 약정식을 추진하는 배경에도 이런 차이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책금융은 늘 숫자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어떤 딜에 얼마를 넣느냐만큼, 그 딜을 어떤 장면으로 보여주느냐도 중요하다. 국민성장펀드가 이제 막 첫발을 뗀 상황이라면 더 그렇다. '1호' 신안우이가 대외 약정식까지 가는 동안, '삼성전자 P5'가 한발 물러난 배경에는 결국 돈의 논리만이 아니라 '보여주기'의 논리도 함께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