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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1분기 회사채 시장은 총발행 규모 자체는 줄었지만, 이슈어 구도는 어느 때보다 크게 흔들렸다. 전통적으로 시장을 주도해 온 SK와 LG그룹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한화그룹이 최대 발행사로 올라섰다.
CJ와 롯데그룹 등은 여전히 제한적인 자금 조달을 보였다. '어느 기업이 얼마나 많이 찍었느냐'보다 '누가 찍고, 누가 안 찍었느냐'가 더 선명하게 갈렸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2026년 1분기 DC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총 1조997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조5220억원) 보다 소폭 증가한 수준으로, 단일 그룹 기준 최대 이슈어로 부상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오션, 한화에너지, ㈜한화 등이 적극적으로 발행했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인적분할된 산업용장비 업체 한화비전은 초도 발행을 진행했다.
개별 기업 기준으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5000억원으로 증액 발행 한도까지 조달을 마쳤다.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는 모집액 2500억원에 3조2300억원의 자금이 몰리며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방산과 항공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수주 기반을 확보하고 있어 새해 첫 회사채 발행에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한화그룹은 방산과 에너지라는 업종 특성상 중장기 투자 수요가 맞물리며 발행 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렸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계열사 최고재무책임자(CFO) 간 조달 타이밍과 규모, 발행금리 수준을 두고 경쟁이 붙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내부적으로도 공격적인 기조가 감지되기도 했다.
이 같은 조달 확대는 단순히 발행 규모에 그치지 않고 증권사 리그테이블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화 계열 딜을 다수 확보한 증권사들이 주관 실적을 빠르게 쌓으며 순위 변동을 이끌었다. 특정 그룹의 발행 확대가 시장 내 플레이어들의 성적표까지 좌우한 셈이다.
반면 SK그룹은 이례적으로 존재감이 옅어졌다. 1분기 SK그룹의 회사채 발행액은 총 1조6850억원으로, 전년 동기(4조5000억원)와 비교했을 때 62.5% 급감했다. SK그룹 내에서 빅이슈어로 꼽히는 SK하이닉스가 올해 공모채 발행에 나서지 않으면서 시장 전반의 발행 규모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올해 충분한 현금 여력을 확보한 상황"이라며 "금리 부담이 높은 환경을 감안해 굳이 공모채 시장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SK그룹 내 기조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연간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요 계열사들이 투자 사이클과 현금흐름을 고려해 외부 조달을 최소화할 경우, 예년 대비 연간 발행 규모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는 회사채 시장 전체의 수급 구조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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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역시 일부 계열사를 중심으로 발행을 이어갔지만 과거와 같은 존재감은 다소 약해졌다는 평가다. 1분기 총 발행액은 지난해 2조9600억원 수준에서 올해 1조4000억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매년 1조원이 넘는 금액을 조달했던 LG에너지솔루션이 올해 발행액을 절반가량 줄였다. 지난 2024년, 2025년 모두 각각 1조6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던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8000억원을 조달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공모채 발행액 중 대부분을 전기차(EV)용 배터리 생산을 위한 신규 투자 자금으로 사용했었으나, 올해에는 기존 회사채 차환을 위한 발행에 초점을 맞췄다.
CJ(1조3350억원)와 롯데(1조677억원) 등 다른 대기업 그룹들도 시장 변동성과 투자심리 위축 영향 속에 보수적인 조달 기조를 유지하며 존재감을 키우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올해 1분기 회사채 시장은 조달을 한 기업과 아예 발행을 줄이거나 미룬 기업 간의 격차가 뚜렷하게 벌어진 시기로 기록됐다. 전반적인 금리 부담과 시장 변동성 확대 속에서 선별적 조달이 뚜렷해지며, 모든 대형 이슈어가 일제히 시장에 나오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업종별로 보면 방산과 석유화학, 에너지 계열 기업들이 주요 이슈어로 부상한 점도 특징이다.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와 산업 투자 사이클 변화가 맞물리면서 해당 업종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확대된 영향이다. 반면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은 실적 개선세에도 불구하고 내부 유동성을 활용하는 전략을 택하며 회사채 시장 의존도를 낮췄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리 레벨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는 환경에서 기업별로 재무 전략과 자금 조달 방식의 차이가 부각된다"며 "현재 조달 금리가 기업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아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