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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동사태로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구글의 '터보퀀트' 알고리즘이 촉발한 메모리 수요 우려가 겹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 유례 없이 길었던 메모리 가격 상승과 마진 확대 부담이 누적된 상황에 기술 변수까지 더해지며 시장 심리가 빠르게 식어가는 모습이다.
31일 삼성전자 주가는 개장 직후 전일보다 5% 하락해 16만7500원을 기록했다. 17만원 선을 내준 건 지난 2월 12일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최고가 대비 하락폭은 약 25%에 달한다. 전일 이사회 결의에 따라 오전 중 14조5000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 계획이 공시되며 낙폭 일부를 만회했으나 하락세를 되돌리진 못했다.
하락 배경으로 다양한 요인이 오르내리지만 최근 메모리 반도체 가격 변동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력인 DDR5 16Gb 제품의 스팟(Spot, 현물) 가격은 지난 19일 고점을 기록한 뒤 현재까지 약 5% 가까이 하락했다. 그간 계약가 대비 30% 수준으로 확대했던 스팟 프리미엄도 20% 수준으로 축소된 것으로 파악된다. 스팟 프리미엄은 계약가와 현물가의 차이로 업황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계약가가 현물가보다 비싸게 거래될수록 삼성전자의 가격 협상력이 강해지는 신호로 해석되며, 실적이나 주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가격 상승 속도가 둔화되는 초기 신호가 나타났다는 해석이 많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현물가가 고점을 찍은 19일 이후 9거래일 연속 삼성전자를 순매도하고 있다. 같은 기간 49.6%에 달하던 외인 보유율은 48.62%로 1%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소매 유통 채널에서는 더 급격한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과 중국 유통시장에선 DDR5 모듈 가격이 20~30% 가까이 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메모리 업황이 초호황(슈퍼사이클)에 진입한 작년 하반기 이후 소매·모듈 가격과 현물가가 순차적으로 조정 국면에 들어선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통상 업황이 꺾일 때는 현물가가 먼저 하락한 뒤 계약가로 인하 압력이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전일 미국 마이크론 주가도 9.88% 하락하고 이날 SK하이닉스 주가가 전일보다 6% 이상 하락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현재 메모리 사이클의 지속 가능성과 함께 삼성전자와 같은 공급사의 실적 추정에 대한 검증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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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당장 현물가 조정이 계약가로 전이되거나, 대형 고객사들과 맺은 장기공급계약(LTA)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다"라며 "그러나 너무 비싼 메모리 가격에 대한 부담이 오래 누적된 데다, 여전히 메모리 산업을 시클리컬로 접근하는 기관 시선이 우세하다. 실적으로 이번 사이클 강도를 증명하기 전까진 조정이 반복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지금 가격 변동을 메모리 사이클이 꺾이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번 조정이 수요 둔화의 전조라기보다는 그간 누적된 가격 부담과 유통 재고를 해소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얘기다.
특히 구글의 터보퀀트 알고리즘이 촉매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많다. 해당 기술은 이미 지난해 논문을 통해 소개됐지만, 지난 24일(현지시간) 구글리서치가 이를 재조명하면서 메모리 수요 감소 우려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터보퀀트는 성능 저하 없이 AI 모델의 메모리 사용량을 크게 줄이는 압축 기법이다. 메모리 사용량을 기존 6분의 1 수준으로 낮추면서 연산 속도를 최대 8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에선 연산 효율을 끌어올리는 기술이 반도체 수요를 직접적으로 끌어내릴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AI 산업이 아직 초입 단계에 있는 만큼 비용이 낮아질수록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결과적으로 총수요가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전방의 토큰 사용량 증가 속도는 터보퀀트가 제시하는 메모리 절감 폭(6분의 1)을 상회하고 있어, 메모리 수요가 갑자기 줄어들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번 조정을 계기로 그간 누적된 메모리 가격 인상이 시장에 얼마나 큰 부담을 작용해왔는지 드러났다는 평이다.
중동사태로 시중금리와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등 매크로 불안이 겹치면서 증시 전반의 할인율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주식 자산에 대한 평가 기준이 흔들리면 삼성전자와 같은 메모리 기업의 밸류에이션 멀티플(배수) 조정 역시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전쟁 장기화로 경기가 둔화하면 고객사들이 현 수준 메모리 가격을 장기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계속된다. 이 경우 그간 시장에서 제시한 삼성전자의 대규모 이익 추정치 역시 재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내달 예정된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 발표가 향후를 가늠할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여전히 삼성전자가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주가 흐름은 당분간 횡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AI 수요의 지속성이나 메모리 공급사의 실적 안정성을 투자자들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검증 국면에서 조정이 반복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모두 전방 AI 수요에 맞춰서 증설에 나서는 시점이 늦어져서 공급부족 자체는 내년까지 쭉 간다는 시각이 여전히 유효하다. 실적 추정에도 당장 큰 변화는 없다"라며 "그러나 매크로 불안이 현재 진행형이라 기관에선 현 수준 수익성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느냐를 확인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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