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금융허브의 마지막 퍼즐 '7대 공제회'…이번엔 정말 이전하나
입력 2026.04.01 07:00

정책 드라이브 본격화…이전 논의 '실행 단계' 진입 여부 주목
글로벌 자본은 전주로…공제회는 '조직 이동' 부담에 신중 기조
정관으론 부족한 이전 요건…투자 조직·네트워크 이동이 핵심 변수
정책 변수 부상에 흔들리는 기존 판단…공제회 이전 현실화 가능성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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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전북 전주를 둘러싼 금융권의 움직임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전주 사무소 개설과 한국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전북도는 제3 금융중심지 지정 절차에 들어갔다.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기조까지 맞물리면서 한국투자공사(KIC)와 7대 공제회 전북 이전론도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특히 시장에서는 이번 논의를 과거와 같은 '실현 어려운 구상'으로만 보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30일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이 이사회를 통해 본사 부산 이전을 의결하며, 정책 방향이 정해질 경우 민간 기업까지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다만 글로벌 금융사의 전주 거점 확대와 공제회의 본사 이전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다는 평가도 여전히 존재한다. 전자는 국민연금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전초기지' 성격이 강하지만, 후자는 국내 핵심 기관투자가(LP)의 투자 의사결정 조직 자체를 옮기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3 금융중심지' 드라이브 속도…전주 금융허브 구상은 가시화

    이번 논의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전북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한 뒤 꾸준히 '자산운용 중심 금융도시' 구상을 밀어왔고, 2023년에는 KIC의 소재지를 전주로 옮기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2024년 총선 국면에서는 KIC와 7대 공제회 전북 이전이 지역 공약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당시 공제회 내부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 '황당하다'는 반응이 공개적으로 나왔다.

    이처럼 과거에도 이전론은 있었지만 주로 지역 정치권의 요구나 공약 차원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지금과는 무게가 달랐다.

    올해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북도는 1월 금융위원회에 제3 금융중심지 지정 신청서를 공식 제출했고, 금융위는 평가 지표 마련과 평가위원회 구성 등을 거쳐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에 정부는 3월 들어 2차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해 예외 기준 최소화, 수도권 잔류 최소화, 분산 배치 지양 등의 원칙을 제시했고, 이후 대통령도 공공기관 지방이전 효과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냈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3월 중순 해명자료를 통해 이전 대상기관과 배치 계획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지금은 '정책 방향은 세졌지만 명단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정책 당국과 전북도가 보는 그림은 비교적 명확하다. 서울과 부산에 이어 전주를 제3 금융거점으로 키우고, 국민연금을 축으로 자산운용·대체투자 생태계를 집적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올해 상반기 개소를 목표로 전주 사무소와 한국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고, 블랙록·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GI) 등 글로벌 운용사들도 이미 전주 거점을 마련했거나 확장하고 있다. 국내 부동산·대체투자 운용사들 역시 국민연금과의 협업을 위해 전주 사무소를 내고 있다. 

    전북과 정치권 입장에서는 이런 흐름이 '전주 금융허브'가 구호를 넘어 현실화하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

    글로벌은 '전초기지', 공제회는 '본사 이전'…같은 이전, 다른 의미

    하지만 공제회가 보는 현실은 다르다. 공제회노동조합협의회는 최근 공동성명을 내고 공제회를 2차 공공기관 이전 대상에 포함하는 데 강하게 반대했다. 이들은 공제회가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일반 공공기관이 아니라 회원의 자발적 기여금으로 운영되는 상호부조 성격의 특수법인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이를 일반 공공기관과 동일시해 지방 이전을 강요하는 것은 회원 재산권과 단체 자치권을 침해하는 일이라는 논리다. 

    투자 현장 관점의 반발도 거세다. 공제회는 PE, 인프라, 부동산, 사모대출 등 대체투자 시장의 핵심 LP인데, 서울을 벗어나면 정보 접근성 저하, 네트워크 단절, 핵심 운용 인력 이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공제회와 투자업계가 가장 민감하게 보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공제회들이 특히 국민연금 사례를 자주 소환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2017년 전주 이전 이후 인력 이탈과 인재 유치 문제를 반복적으로 겪었고, 업계에서는 여전히 '서울과의 거리'가 대체투자 경쟁력에 부담이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과 정부는 오히려 국민연금 이전 효과가 이제 본격화하고 있다고 보지만, 공제회와 시장에서는 '국민연금도 힘들어했는데 공제회는 더 어렵다'는 반론이 강하다. 

    같은 사례를 두고 정책 당국은 성공의 신호로, 업계는 경고의 사례로 해석하는 셈이다.

    정관으론 가능하지만…공제회 이전 가로막는 법·제도 한계

    법과 제도 측면에서도 공제회 이전은 한 덩어리로 볼 수 없다. 대한지방행정공제회법, 군인공제회법, 경찰공제회법은 모두 '주된 사무소는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하면서도, 필요하면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서울 외의 곳에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기관들은 형식적으로는 정관 개정만으로도 주된 사무소 이전이 가능해 보인다.

    반면 한국교직원공제회법은 주된 사무소를 서울특별시에 둔다고만 규정하고, 정관으로 둘 수 있는 것은 지부다. 교직원공제회까지 포함해 공제회를 일괄 이전하려면 적어도 일부 기관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법만 바꾸면 된다'거나 '정관만 고치면 된다'는 식의 단순한 접근 모두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더 중요한 건 정관상 가능 여부와 실질 이전은 별개라는 점이다. 정관 변경이 허용되는 공제회라도 실제로 투자본부와 리스크관리, 의사결정 조직, 핵심 운용 인력까지 함께 내려보내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슈다. 내부 이사회나 대의원회 등 의결 구조를 거쳐야 하고, 감독당국과의 조율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여의도와 강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딜 소싱·자문·실사·사후관리 네트워크를 대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업계에서 '주소 이전'과 '조직 이동'은 다른 이야기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정관상 이전이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 투자 조직을 옮기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며 "주소를 옮긴다고 해서 투자나 네트워크가 함께 이동하는 구조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핵심 인력과 딜 접근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결국 회원 자산 운용 성과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번엔 다르다"…정책 드라이브, 구조적 한계 흔들까

    하지만 최근 들어 시장에서는 기존 전제를 다시 보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기존에도 공제회 이전 논의는 반복적으로 제기됐지만, 법적 구조와 내부 반발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동일한 논리로 보면 여전히 실행 난도는 높다.

    이 같은 판단이 흔들리는 배경에는 정책 변수의 변화가 있다. 정책 방향이 명확해질 경우, 그동안 '현실의 벽'으로 여겨졌던 요인들이 실제로는 빠르게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고 있는 까닭이다.

    HMM은 30일 이사회를 열고 본점 소재지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변경하는 정관 개정 안건과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의결했다. 다음달 8일 임시 주총에서 안건이 통과되면 본사 이전은 사실상 확정된다.

    당초 시장에서는 민간 기업의 본사 이전을 두고 현실성이 낮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지만,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7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구조 속에서 정책 방향과 맞물리며 의사결정이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조가 이사회 개최를 저지하기 위해 물리적 대응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온라인 회의로 전환해 안건을 처리한 점 역시 이번 사안이 단순 경영 판단을 넘어 정책 기조와 맞물려 추진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키는 대목이다.

    이 같은 인식은 공제회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공제회는 회원 기여금 기반의 특수법인이지만, 감독 체계와 수장 인선 구조 등을 고려하면 정책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정책 방향이 명확해질 경우 조직 차원의 판단이 빠르게 정리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공제회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시장에서는 이번엔 정말 밀어붙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예전에는 논의 자체가 힘을 못 받았다면, 지금은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논의의 본질은 '가능하냐'가 아니라 '밀어붙일 수 있느냐'에 있다는 평가다. 과거에는 구조적 한계가 논의를 막았다면, 이번에는 정책 드라이브가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느냐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전주 금융허브 구상의 마지막 퍼즐로 꼽히는 공제회가 실제로 움직일 수 있을지, 결국 관건은 기존의 구조적 한계를 정책이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