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인하 자제하라더니"…당국·업계 엇박자에 ETF 시장 '혼선'
입력 2026.04.01 07:00

취재노트
보수 인하 자제 주문 직후 '파격 인하'…당국 기조·시장 현실 엇박자
ETF 순자산 1년 새 70% 급증…점유율 경쟁 속 가격 인하 압력 확대
高환율·RIA 정책 맞물린 '국장 유도' 해석도…과당 경쟁 우려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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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KB자산운용이 국내 지수형·파생형 상장지수펀드(ETF) 보수를 대폭 낮추면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불과 직전까지 감독당국이 '보수 인하 경쟁 자제'를 주문해온 상황에서 나온 조치인 만큼, 정책 기조와 시장 현실 간 괴리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최근 KB자산운용은 코스피·코스닥150 등 지수형 ETF와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등 총 7종의 보수를 일제히 인하했다. 특히 코스피200 선물 기반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은 총보수를 0.6%에서 0.022% 수준까지 낮추며 사실상 '제로 보수'에 가까운 수준을 제시했다. 지수형 ETF 역시 0.02% 수준까지 떨어지며 기존 업계 평균과 격차를 크게 벌렸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ETF 시장 내 과도한 보수 인하 경쟁이 시장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직·간접적으로 인하 자제를 요청해왔다. 실제 지난 24일 간담회에서도 해당 기조가 재차 강조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간담회 직후 보수 인하가 단행되면서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며 "시기적으로 보면 납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가 이번 사안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배경에는 ETF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자산운용사 운용자산은 1937조원을 넘어섰고, 공모펀드 성장의 대부분이 ETF에서 발생했다. ETF 순자산은 1년 만에 70% 넘게 증가하며 자금 유입의 핵심 채널로 자리 잡았다.

    즉 ETF 시장에서 점유율 확보가 곧 운용사 실적으로 직결되는 구조가 됐다. 같은 기간 자산운용사 순이익 역시 3조원을 넘어 전년 대비 66% 이상 증가했는데, 운용자산 확대와 수수료 수익 증가가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ETF 시장에서 뒤처질 경우 실적 격차가 빠르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형성된 셈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 보수 인하는 가장 즉각적인 대응 수단이다. 상품 간 차별화가 제한적인 지수형 ETF 특성상 가격 경쟁력은 자금 유입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특히 점유율 경쟁이 치열한 중·상위권 운용사일수록 보수 인하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유인이 크다.

    이번 건을 두고 최근 정책 환경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1510원대를 웃도는 등 외화 유출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국내시장 복귀계좌(RIA) 도입 등을 통해 '국장' 자금 유입을 유도하고 있는 만큼 지수형 ETF의 가격 경쟁력 제고와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번에 보수를 낮춘 상품도 코스피200·코스닥150 등 국내 지수형과 선물 기반 레버리지·인버스 등 '국장' 노출 상품에 집중돼 있다.

    KB자산운용은 이번 결정에 대해 "단순히 점유율 확대가 목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투자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작은 보수 차이가 장기적으로 큰 성과 차이를 만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당국은 기조 변화에는 선을 긋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번 보수 인하와 관련해 "보수 인하 경쟁에 대한 자중 등 경계 입장은 변함없다"면서도 "개별 상품 보수율에 직접 개입하기는 어렵고 유사 상품 간 비교를 통해 판단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ETF는 개인 투자자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며 주류 투자 상품으로 자리 잡았고, 이에 따라 운용사 간 경쟁도 가격과 유통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다만 경쟁이 과도해질 경우 시장 구조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과도한 보수 인하는 운용사의 수익 기반을 약화시키고, 인력 보상과 시스템 투자 여력을 제한해 장기적으로 상품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운용역은 "보수가 낮아지면 투자자 입장에선 당장은 유리하지만, 운용사 입장에선 수익 기반이 약해지면서 장기적으로 상품 개발과 운용 역량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경쟁이 지나치게 격화되면 결국 시장 전체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