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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를 기반으로 한 증권사의 자금력이 빠르게 불어나면서, 대형사들이 기존에 관심을 두지 않던 중소형사의 채권 업무·구조화 딜까지 적극적으로 담는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
모험자본 투자 의무 비중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구조 속에서, 투자처를 확보하기 위한 대형사의 '물량 확보 경쟁'이 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현장에서는 기존 거래 구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증권가에 따르면 기업금융(IB)부문에 강점이 있는 한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최근 꾸준히 거래를 이어오던 발행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딜을 대형사에 넘기게 됐다. 해당 발행사와는 오랜 거래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자금력 차이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여파는 중소형 증권사뿐만이 아니라 제2금융권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과거에는 PF딜 총액인수 이후 일부 물량이 중소형 증권사나 저축은행 등으로 배분됐지만, 최근에는 대형사가 상당 물량을 자체 북으로 담으면서 외부 배정 물량 자체가 줄어드는 모습이다.
한 중소형사 인수금융 실무자는 "예전에는 중소형사가 주도하는 딜은 대형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대형사가 먼저 조건을 제시하고 대부분 물량을 가져가면서 기존 주관사 역할 자체가 축소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경에는 제도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의 일정 비율을 기업금융 자산으로 운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모험자본 투자 비중은 2028년까지 25%로 확대될 예정이다.
최근 IMA 사업을 시작한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을 비롯해 신한투자증권·하나증권 등이 발행어음 사업자로 진입하면서 대형사들의 자금 규모도 빠르게 커졌다. 초대형 IB들의 발행어음 잔액은 이미 5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대형 증권사 입장에서는 투자 범위를 넓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금 규모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을 기업금융 자산으로 채워야 하는 만큼, 기존 중소형사가 담당하던 회사채, 메자닌, 인수금융 영역까지 검토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딜 사이즈나 유형을 가리지 않고 투자 기회를 찾는 흐름이다.
한 대형사 IB 실무자는 "투입해야 할 자금은 계속 늘어나는데 투자처는 제한적이어서, 기존에 보지 않던 딜이라도 조건이 맞으면 대부분 들여다보고 진행하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면 중소형 증권사들은 기존 영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다. 과거에는 중소형사가 맡던 영역이 '대형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영역으로 일정 부분 유지됐지만, 최근에는 대형사들이 적극적으로 진입하면서 역할 구분이 흐려지고 딜 접근 기회도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중소형 증권사들은 전통 IB 부문을 강화하며 체급을 키우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기업공개(IPO)팀을 3개까지 확대한 유진투자증권 등 일부 중소형 하우스는 전통 IB 조직을 재정비하고 있다. 채권·구조화 딜에서 대형사와의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IPO 등 전통 IB를 통해 트랙레코드를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우스 내부 역량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투자업계는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모험자본 투자 비중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구조인 만큼, 대형사 입장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금을 지속적으로 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투입해야 할 자금은 계속 늘어나는데 적합한 투자처는 제한적"이라며 "결국 대형사 입장에선 조달 가능한 딜이라면 가리지 않고 참여하는 경향이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