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자본 늘리면서 회수길은 막는다?…'중복상장 금지'에 속타는 VC들
입력 2026.04.03 07:00

취재노트
중복상장 일괄 규제에 VC들 "과도하다"
중소·벤처 생태계에 더 큰 직격탄 우려
이미 투심위에서부터 제동 거는 분위기
모험자본 확대 기조와 상충된단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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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이 '중복상장 원칙 금지' 기조를 전면화하며 벤처투자(VC)업계에선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주요 회수 통로를 일괄적으로 제약하는 조치가 모험자본 확대를 강조해 온 정책 방향과 엇박자가 난단 지적이다. 

    정부는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불가피한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하겠단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세부 기준은 2분기 내 마련될 전망이지만 시장에선 이미 사실상 전면 제한에 가깝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시장에선 '빅딜 기근'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크레딧 펀드와 주요 증권사 IPO 부서는 당장의 일감 걱정에 한창이다. 

    대기업 자회사의 상장 문제는 충분히 공론화됐지만, 시장에선 그 이면에 더 많은 딜이 쌓여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VC업계에선 일괄 규제가 적용될 경우 벤처 생태계가 더 잦고, 광범위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점친다. 

    한 VC 고위 관계자는 "VC의 대표적인 엑시트 전략 중 하나가 투자한 스타트업을 중견기업에 매각한 뒤, 시너지를 통해 실적을 키우고 자회사 형태로 상장시키는 것"이라며 "M&A 펀드를 통해 이런 식으로 투자한 사례가 적지 않은데, 중복상장 규제에 걸리면 회수 경로가 줄줄이 막힐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VC 펀드 자금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공적 자금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회수 차질이 발생하면 그 손실이 뒷단으로도 이어지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예비심사 청구를 한 디티에스, 덕산넵코어스, 한컴인스페이스 등은 중복상장 이슈로 심사가 지연되고 있다. 사업 영역이 모회사와 상당 부분 분리돼 있는 경우에도 '지배관계' 기준이 확대 적용되며 상장 일정이 불투명해졌단 시각이 있다. 중복상장은 코스피보다 코스닥에서 더 잦게 일어난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최근 1년간 상장 예심을 청구한 기업 가운데 중복상장에 해당하는 사례는 코스피 3건, 코스닥 16건으로 집계된다. 

    당장 투자 의사결정에도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VC업계에선 중복상장 규제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투자 대상은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분위기다. 내부 투자심의위원회 통과 자체가 쉽지 않단 평가다. 향후 포트폴리오 논란이나 회수 지연으로 이어질 경우 펀드 운용 전반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국회에서는 중복상장 개선 방향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책을 논의했다. 해당 세미나에서는 획일적인 규제 대신 벤처·중소기업 생태계를 고려한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오갔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은 세미나에서 ▲반도체·바이오·AI 등 전략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이나 ▲물적분할이 아닌 외부 기술기업 인수 및 정상적인 사업 재편 과정에서 추진되는 상장은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봤다. 이어 제도 도입 이전 상장을 준비해 온 기업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을 배제하고,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는 등 경과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해당 세미나에 참석한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VC 펀드의 우려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면서도 "논의 전후의 상황을 살펴보면 추가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더 두드려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VC 부사장은 "중복상장을 일괄적으로 규제해 투자 회수 통로를 막는 것은 모험자본 확대를 내세운 정부 정책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며 "알짜 회사를 물적분할해 상장하는 방식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VC가 투자하는 구조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을 인수한 기업은 외부 기술을 통해 모회사와 스타트업 모두의 기업 가치를 키우고 시너지를 만든다. 그 뒤에 상장을 통해 VC들이 엑시트 하는 구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