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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하며 정유사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제마진이 급등하며 호기를 맞았지만 원유 수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실적 불확실성이 커졌다.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격 상한제를 꺼내들었고, 사정당국이 유가 담합 혐의까지 정조준하고 있어 기름값 인상분을 시장에 전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월 말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어졌다. 수급 불안 속 국제 유가와 정제마진은 출렁였다. 정제마진은 통상 배럴당 5달러를 이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최근 일부 유종의 경우 배럴당 수십달러를 오가고 있다. 기존에 싸게 쟁여둔 원유 재고와 석유제품 간 가격이 벌어지면서 글로벌 정유사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내 정유 4사(SK에너지·에쓰오일·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도 단기적으로 정제마진 상승 수혜가 예상된다. 작년에 사둔 원유로 만든 제품을 가격 급등기에 팔았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 분쟁이 격화한 3월 이익 규모가 역사상 최고 수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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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들이 정제마진 상승에 반색하기에는 원유 수급 문제가 더 급하다. 중동 의존도가 절대적인데 선박들의 발이 묶였다. 미국-이란의 휴전으로 2주간의 시간을 벌었지만 향후 협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단하기 어렵다. 마진을 현실화할 물량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란이 통행료를 고집하면 조단위에 이르는 지출이 생길 수도 있다. 시장 불안기에 호실적이 주목받을까 걱정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정부는 비축유를 단계적으로 시장에 풀기로 했다. 정유사 입장에선 일부 원재료를 확보할 수 있지만 기존 수요를 모두 충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다시 정부에 원유를 돌려줘야 하는데 앞으로도 유가가 고공행진한다면 이 비용도 적잖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2분기 이후 실적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유가가 떨어져도 5~6월 사용분은 이미 고가에 확보한 상황이라 역마진이 불가피하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정유사들은 작년에 사둔 원유를 기반으로 만든 제품을 전쟁 이후 비싼 가격에 팔았기 때문에 1분기 호실적을 거둘 것"이라면서도 "중동산 원유 수급이 계속 막힐 경우 2분기는 손익분기점 수준으로 떨어지고 3분기부터는 대규모 적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의 상한을 지정하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도 시행하고 있다. 사실상 적자 판매다. 정부가 정유사의 손실을 재정으로 지원하겠다 했지만 정유사가 가격을 결정할 때만큼의 실적을 채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활유 등 제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역에서 실적을 내야 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최근 사정당국이 정유사들을 대상으로 담합 조사에 들어간 것도 변수다. 지난달 초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사들의 담합 혐의와 관련해 현장 조사에 착수했고, 몇 주 뒤 검찰도 정유 4사 본사와 사단법인 한국정유협회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정부가 에너지 상황에 우려를 표한 후 이뤄진 조치다.
사정당국이 정유사들의 담합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원유와 제품 가격이 국제 시장의 시황에 따라 연동되는 사업 특성 상 정유사들의 공급가는 비슷한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엔 정유사 영업팀장들이 모여 담합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엔 담당자들이 정보를 주고 받는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정유업계는 사업자가 많지 않고 관련 정보도 빠르게 도는 시장이라 담합이 가능한 구조인지는 의문이다"라며 "정확한 혐의나 담합의 경로는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지난 2011년 정유사들의 '원적지 관리' 담합에 대해 4348억원의 과징금을 부여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정유사들이 거래 주유소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지 않고, 각자 관할 주유소를 나눠가지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명확한 합의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논리로 과징금 처분 취소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반대로 최근엔 반드시 만나서 가격을 결정하는 '경성 담합' 외에 정보를 공유하는 '연성 담합'이 문제되는 흐름도 나타난다. 경쟁자가 많지 않은 시장일수록 제품을 어느 정도로 생산하고 공급하느냐는 정보만으로도 시장의 경쟁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당국이 주시하는 만큼 무혐의를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통상 공정거래 관련 사안은 공정위가 먼저 조사를 마친 후 고발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이 과정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 자체 수사 역량을 갖춘 검찰이 공정위와 별개로 신속하게 움직인 터라 정유사들이 느끼는 압박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정유사 임원들의 데이터 자산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사정당국이 에너지 물가를 잡기 위해 칼을 뺐을 수도, 실제 담합 움직임을 포착했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현 시점에 정유사가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들기는 쉽지 않다.
한 대형 법무법인 공정거래 전문가는 "꼭 만나서 가격을 정하지 않더라도 정보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담합이 문제될 수 있다"며 "꼭 담합 문제가 아니라도 정유사들은 최고가격제 등 정부 시책에 막혀 고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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