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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2026년 상반기 국내 자본시장이 ‘물량 부담(오버행)’ 우려에 휩싸였다. SK하이닉스, HD한국조선해양, 한화솔루션, SKC 등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이 잇따라 조 단위 자금조달에 나서면서다. 과거 주가 상승기에 편승했던 ‘묻지마식 증자’와는 결이 다르지만, 강화된 주주 보호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시장의 거센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발행시장의 특징은 조 단위 ‘메가딜(Mega-deal)’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SKC의 1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시작으로 SK하이닉스의 해외 주식예탁증서(ADR) 발행,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HD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 교환사채(EB) 발행까지 이어지며 전체 규모는 최대 20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에서는 잇따른 자금조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별 거래의 성격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유통 가능한 주식 수가 늘어나면서 투자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ADR이 해외에서 발행되더라도 향후 국내 원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어, 결국 지분 희석과 유사한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SKC는 1조원 규모 유상증자 공시 이후 주가가 약 20% 급락하며 시장의 ‘물량 부담’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과거에도 주가 상승기에 맞춰 증자에 나섰던 사례들이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진 전례가 적지 않은 만큼, 투자자들의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과 같이 매크로 불확실성으로 주가가 눌린 상황에서 공급 확대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성장’과 ‘생존’ 위한 불가피한 선택… 시장은 ‘오버행’ 몸살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자금조달을 단순히 ‘주가 고점 활용’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규모 투자나 차입금 상환 등 실질적인 '생존형 수요'가 동력이기 때문이다.
한화솔루션이 대표적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높은 차입 부담을 감안할 때 증자가 불가피한 시점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한화솔루션의 순차입금은 12조2000억원 수준으로, EBITDA의 29배에 달했다. 현재 수익 수준을 기준으로 할 경우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3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는 의미다. 회사는 순차입금/EBITDA 5배 이하 유지라는 재무 약정을 충족하지 못해, 채권자가 기한이익상실(EOD)을 선언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SKC 역시 석유화학과 동박 사업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추가 차입 여력이 제한된 상태였다.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상황에서 유상증자는 사실상 불가피한 선택지였다는 분석이다. HD한국조선해양 또한 조선업 호황 국면에서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 등 투자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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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이 바꾼 판도…“절차만으론 부족”
문제는 이러한 자금조달이 주주 가치 훼손 논란과 맞물리며 시장의 눈높이를 크게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면서, 단순한 절차 준수를 넘어 주주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까지 함께 따져보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한화솔루션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회사는 주주총회에서 발행 가능 주식 수를 확대하는 안건을 의결하면서 구체적인 증자 계획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고, 이후 이틀 만에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기습 증자’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주총 직후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곧바로 증자안을 의결한 점을 두고 이사회가 충분한 검토를 거쳤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처럼 이사회 의사결정이 ‘회사’뿐 아니라 ‘주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원칙이 강화되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 문턱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처럼 신속한 의결로 진행되던 자본 확충이 이제는 주주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보호 장치를 동반해야 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 행동주의 펀드 관계자는 “과거에도 증자에는 늘 주주 반발이 뒤따랐지만, 최근에는 상법 개정 영향으로 기업들도 조달 과정에서 주주 반응을 더욱 민감하게 고려하는 모습”이라며 “이제는 자금조달의 필요성뿐 아니라 주주 설득 전략이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주주 보호 대책이 ‘성패 좌우’…시장은 줄타기
이에 따라 기업별로 지분 희석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응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화솔루션의 향후 대응을 주목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해당 증자를 중점 심사 대상으로 선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계획 수정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증자 규모를 축소하거나 제3자 배정 방식을 병행하는 등 구조 변경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SK하이닉스 역시 주주가치 희석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을 병행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회사 측은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주주 보호를 위한 보완책이 뒤따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HD한국조선해양의 경우 자회사 EB 발행과 함께 HD현대중공업 지분을 지속적으로 유동화해온 점이 투자심리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그룹 차원의 적정 지분율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재한 점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시장의 평가는 ‘자금조달 자체’보다 ‘어떻게 조달했는가’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과 성장을 위한 자본 확충이 불가피하지만, 강화된 주주 보호 요구 속에서 조달 방식과 시기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국 관건은 진정성”이라며 “자금조달의 목적이 타당하더라도 주주가치 훼손을 최소화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다면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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