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장펀드에 쏠린 정책자금…"첨단산업 몸값만 고공행진" 경고음
입력 2026.04.13 07:00

취재노트
반도체·AI 등 첨단산업이 사실상 투자 가이드라인
"메자닌 투자 가능해야…출자 성적표 관리 가능"
"밸류 부담이 미래 투자자에게 전가되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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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가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첨단산업에 대규모 자금이 쏠리면서 시장 일각에서 밸류에이션 과열 우려가 나온다. 투자할 만한 섹터는 정해져 있는데 가격만 치솟고, 정작 담을 만한 딜은 부족하다는 게 운용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재정모펀드 위탁운용사는 다음주 중 국민성장펀드의 자(子)펀드 운용사(GP) 선정을 위한 공고를 내고 구체적인 선정 일정과 기준을 공개할 예정이다. 자펀드는 결성 규모에 따라 대형(2곳)·중형(4~5곳)·소형(7~8곳)으로 나뉜다. 액셀러레이터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운용사가 뛰어든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업계 시각이다. 산업은행 측에서도 흠결없고, 뒷말 없는 운용사를 선정하려다 보니 예상보다 일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정부·정책금융·민간 자금을 합쳐 약 150조원을 마련해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우주·방산, 탄소중립 등 첨단 전략산업과 관련 기업, 프로젝트에 장기 투자하는 초대형 정책 펀드다. 첨단산업이 투자 가이드라인으로 제공된 상황에서 "첨단산업 말고는 할 만한 섹터가 없다"는 운용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제는 자금이 해당 섹터로만 쏠리면서 밸류에이션이 가파르게 뛰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투자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할 만한 섹터는 정해져 있는데 밸류가 너무 높아졌다"고 말했다. 국민성장펀드 출범 이후 첨단산업 관련 비상장 기업들의 몸값이 빠르게 올라간 탓이다. 또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정책 드라이브가 만들어낸 유동성이 가격을 왜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성장펀드의 성격 자체도 시장 논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정책성 자금의 색채가 짙다 보니 주요 참여 주체도 은행이나 보험사 등 금융기관 계통에 편중돼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나라에서 밀어붙이는 거대한 사업이니 너무 소외되지 않을 정도로만 참여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알파를 추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구조적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행 국민성장펀드는 하방 위험을 방어할 메자닌 투자를 사실상 배제한 채 상환권 없는 주식 투자만을 강제하고 있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손실 방어 수단 없이 고평가된 자산에 베팅해야 하는 셈이다. 이 점이 운용사들의 참여 의지를 꺾는 핵심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산업은행도 메자닌 투자가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두고 고민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유동성만 풀어서 인수합병(M&A) 매물 가격만 잔뜩 올려놓았다간 뒷감당이 불가능하다"며 "실질 성장이 나오는 섹터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써야 하니까 쓰는' 식의 에쿼티 투자만 이어진다면 버블은 불가피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메자닌 투자가 가능하게 해야 출자 성적표를 최종적으로 깨지지 않게 관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당초 시장에서는 대기업들의 인프라 관련 카브아웃(사업부 분리매각) 매물이 나오면서 딜 파이프라인이 풍성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카브아웃 딜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투자 대상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엑시트'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감수하고 투자했다면, 결국 더 비싼 값에 사줄 다음 투자자가 있어야 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나중에 누군가는 비싼 값을 주고 사줘야 하는데 감당이 될지 모든 운용사가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며 "밸류 부담이 현재 투자자가 아닌 미래 투자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