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태우긴 아깝다'…자사주 소각 대안으로 떠오른 '공모 매출'
입력 2026.04.15 07:00

자사주 소각 의무화 이후 대안 모색 움직임
공모 형태 자사주 매각 구조 기업에 제안
불가능하진 않지만 상법·자본시장법 문턱 높아
일본선 실제 사례도…국내선 '아이디어'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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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사주 소각 의무화 흐름이 본격화되면서, 증권가 일각에서 '소각 대안'으로 자사주 공모 매출 구조를 기업에 제안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다만 제도적 제약이 적지 않은 만큼, 실제 실행보다는 아이디어 차원의 검토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한 증권사는 상장사 일부를 대상으로 자사주 활용 방안 중 하나로 공모 형태 자사주 매각 구조를 제안했다. 자사주를 단순 소각하는 대신 시장에 다시 풀어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회사 측에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실제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해당 구조는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를 기존 주주와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 방식으로 매각하는 것이 골자다. 할인율을 적용해 매각할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는 시가 대비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취득할 수 있고, 회사는 자사주를 처분하면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신주 발행이 아니기 때문에 지분 희석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자사주는 이미 발행된 주식이기 때문에 증자가 아니라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처분하는 개념"이라며 "할인을 적용하더라도 소각과 달리 현금이 유입된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선 검토해볼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 구조가 유상증자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사주가 시장에 풀리면서 유통주식 수가 늘어나고, 할인 매각이 이뤄질 경우 주가에는 단기적인 하방 압력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형식상으로는 구주 매출과 유사하지만, 매각 대금이 회사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자금조달 성격을 띤다"며 "투자자 입장에선 유증과 비슷하게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법적 측면에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넘어야 할 문턱이 적지 않다. 

    개정 상법은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취득 후 1년 내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보유·처분이 가능하더라도 주주총회 승인과 정관상 근거, 경영상 목적 등이 충족돼야 한다. 특히 상법은 자기주식 처분 시 기존 주주에게 지분 비례로 균등하게 배정하는 원칙을 두고 있어, 일반 투자자까지 포함한 공모 매각 구조는 별도의 예외 사유에 의존해야 한다.

    자본시장법 측면에서도 공모 형태로 자사주를 매각할 경우 증권신고서 제출 등 공모 규제를 적용 받을 가능성이 높고, 가격 산정의 공정성이나 미공개정보 이용 여부 등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자칫 '우회적 자금조달'로 해석될 경우 감독당국과의 마찰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유사한 구조가 일부 존재한다. 특히 일본은 자사주 처분을 제도적으로 '공모' 개념 안에 포함하고 있는 대표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도쿄증권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자사주 처분 자체를 투자자 모집(offering)의 한 형태로 명시하고 있으며, 실제 기업 공시에서도 '공모(public offering)에 의한 자사주 처분'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과거 간사이전력과 스미토모미쓰이트러스트홀딩스 등이 신주 발행과 함께 자사주를 공모 방식으로 매각해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사례 역시 신주 발행과 병행되거나 기관투자자 중심의 국제 오퍼링 형태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아, 국내에서 논의되는 단순 공모 매출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는 평가다. 미국과 홍콩 등 주요 시장에서도 자사주 재매각은 가능하지만,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공모 형태보다는 블록딜이나 장내 매각이 주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결국 현재 단계에서 자사주 공모 매출은 '소각 외 선택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실험적 아이디어'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도 단순 소각 외에 자사주 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건 맞지만, 제도적 제약과 시장 반응을 고려하면 실제 실행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며 "당분간은 시장에서 자사주 공모 매출을 비롯해 이런 저런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