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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이 2년만에 또다시 2000억원대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선 가운데 공모 흥행 여부에 증시의 시선이 모인다. 한국투자증권이 잔액인수를 약속하고 대형 벤처캐피탈(VC) 앵커 투자까지 확보했지만, 최근 대형 유상증자가 잇따르며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점이 변수로 꼽힌다.
자본력을 앞세운 글로벌 AI 기업들이 의료분야에도 속속 진출하는 가운데, 국내 의료AI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도 이슈다. 국내 의료AI 분야 기업의 대규모 자금조달이라는 점에서, 국내 성장주에 대한 투자 심리의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루닛은 2115억원 규모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진행 중이다. 발행 예정 주식 수는 790만6816주다. 대표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으로, 미매각 물량 발생 시 이를 인수하는 잔액인수 구조다.
시장에서는 이번 딜을 성장 투자보다 재무구조 안정 목적이 짙은 조달로 보고 있다. 루닛은 조달 자금 중 1377억원을 채무상환에, 737억원을 운영자금에 투입할 예정이다. 전체 조달 자금의 65% 이상이 차입금 및 전환사채(CB) 상환에 배정됐다.
핵심은 볼파라(현 루닛 인터내셔널)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재무 부담이다. 루닛은 2024년 볼파라 인수 당시 총 1715억원 규모 사모 CB를 발행했다. 해당 CB는 올해부터 조기상환 청구가 가능하며, 최근 1차 풋옵션 행사에서도 약 187억원 규모 상환이 예정돼 있다. 루닛은 향후 추가 풋옵션 행사에 대비해 유증 자금 일부를 별도 예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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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시장 우려는 루닛의 현금창출력과 맞닿아 있다. 루닛은 2022년 상장 당시 2025년 영업수익 1495억원, 영업이익 583억원을 제시했지만, 실제 지난해 실적은 매출 831억원, 영업손실 831억원에 그쳤다. 영업활동현금흐름도 최근 2년 연속 500억원 이상 유출됐다.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이번 유증으로 확보하는 운영자금 역시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증권가에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키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번 유상증자를 사실상 루닛의 "마지막 기회"로 규정하며, 비용 절감과 미국 사업 확대, 신규 사업 성과를 분기 실적으로 입증해야 시장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규모 자금 조달 이후에도 손익 개선이 지연될 경우 추가 조달 부담이 재차 부각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루닛 주가도 유상증자 발표 이후 조정을 받았다. 지난 1월 말 장중 4만663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유증 발표 직후 16% 이상 급락했고, 이후 3만원 초반까지 밀리며 고점 대비 한때 20% 이상 하락했다. 당초 2500억원 수준이던 조달 계획이 2115억원대로 낮아진 점 역시 위축된 투자심리를 반영한다는 평가다.
루닛은 이번 유증이 단순 재무 방어 목적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회사 측은 "재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해소하는 동시에 글로벌 연구개발(R&D)과 제품 고도화, 해외 사업 확대를 병행하기 위한 조달"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내부적으로 이번 유증의 실권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에서도 루닛의 성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투자증권이 잔액인수 구조로 참여하고,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300억원 규모로 투자에 나선 점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한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로 루닛 제품 판매는 일부 성과를 내고 있다. 루닛에 따르면 볼파라 영업망을 통한 자사 제품의 연간반복매출(CARR)은 2024년 3분기 대비 2025년 말 기준 약 28배 증가했다.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올해 현금영업이익(EBITDA)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대형사 한국투자증권의 참여를 성장성에 대한 전면적 베팅으로만 해석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딜에서 단독주관을 맡은 한국투자증권은 모집총액의 1.0%를 기본 인수수수료로 받고, 실권주 발생 시 잔여 인수금액의 15%를 추가 실권수수료로 받는다. 최근 위축된 주식자본시장(ECM) 환경을 감안하면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한 거래라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시장의 판단 기준은 미래 성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실적이라는 평가다. 의료AI 업계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기술력만으로 프리미엄을 인정받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게다가 의료 AI는 미국의 주요 AI 기업들이 차기 핵심 매출처로 꼽고 있는 부문이다. 구글은 이미 2년 전인 2024년 자사의 의료용 AI 서비스인 메드제미나이(Med-Gemini)가 만든 분석 보고서가 인간 의사 대비 흉부 엑스레이의 경우 72%, 뇌CT의 경우 53% 이상 비슷하거나 더 우수했다는 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주로 흉부 엑스레이 판별을 기반으로 하는 국내 상장 의료AI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 부문 국내 1위 기업인 뷰노조차 지난해는 물론, 최근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AI 비즈니스의 특성상 수익이 날 때까지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수십조원의 자본력을 갖춘 글로벌 AI 업체들을 상대로 생존할 수 있겠느냐가 핵심이다.
한 증권사 ECM 관계자는 "주관사와 앵커 투자자가 붙었다는 것은 최소한 성장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의미"라면서도 "다만 지금 시장은 기술보다 현금흐름과 수익성을 본다. 이번 유증 이후에도 루닛이 숫자로 성장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추가 조달 부담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