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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감독원이 기업공개(IPO) 증권신고서 심사에서 재무적투자자(FI)와의 계약이 상장 성패에 미치는 영향까지 점검하고 있다. 수요예측 이후 FI와의 이해관계 충돌로 상장이 무산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관련 계약에 대한 검토가 한층 강화되는 분위기다.
14일 금융투자(IB)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인 전기차 충전 플랫폼 기업 채비는 최근 금감원 증권신고서 심사 과정에서 별도 확약서를 제출했다. 해당 확약서에는 "주요 FI와 '적격상장 가격 기준에 미달하는 공모가에도 풋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채비는 이달 10일부터 16일까지 기관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한 후 29일 상장할 예정이다.
채비의 희망공모가 밴드는 1만2300원~1만5300원이다. 주요 FI와의 계약상 적격상장 기준가는 약 1만4700원~1만5000원으로, 공모가가 밴드 하단에서 결정될 경우 이 기준에 미달할 수 있다. 기존 계약에 따르면 최종 공모가가 FI 내부수익률(IRR) 8%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FI는 대주주에게 연복리 15% 기준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금감원은 심사 과정에서 적격상장 요건 미충족 가능성과 그 경우 권리관계를 명확히 기재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확인된다. 금감원은 "개별 계약 변경을 직접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공모가 밴드와 계약상 기준이 충돌할 수 있는 경우 투자자가 이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공시를 보완하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채비는 최초 신고서에서 '상장 시 풋옵션 자동 소멸' 구조만 설명했으나, 이후 금감원 심사 과정에서 IRR 8% 미달 공모가 결정 시 발생 가능한 계약상 책임과 권리관계에 대한 설명을 추가로 보완했다. 회사는 2·3차 정정신고서를 통해 FI의 풋옵션 미행사 확약과 위반 책임 존속 여부를 단계적으로 추가 기재했다.
채비는 스틱인베스트먼트, KB자산운용 등 주요 FI로부터 "적격상장 요건(명확히 하면 IRR 8% 이상의 공모가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풋옵션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임을 당사자간에 추가 확약하였습니다"는 부분을 신고서에 추가 반영했다.
IPO 과정에서 수요예측 부진으로 FI 기대수익률에 미달해 상장이 무산된 사례는 이미 여럿 있다. 케이뱅크는 2024년 10월 기관 수요예측 부진으로 상장을 철회했고, 올해 재도전에서는 최대주주 비씨카드가 약 1000억원 규모 차액보전 약정을 제공하고서야 상장을 성사시켰다.
롯데글로벌로지스 역시 지난해 상장 철회 이후 롯데그룹이 FI 보유 지분을 약 4000억원에 되사주는 계약을 이행했다. 2017년 투자 당시 체결한 풋옵션 계약에 따라 상장이 무산될 경우 FI 지분을 주당 5만720원에 되사주는 구조였다. 이는 IPO 당시 제시한 공모 희망가 밴드(1만1500원~1만3500원)와 비교하면 약 4배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금감원이 공모가와 연동된 FI 계약이 상장 절차에 미칠 영향까지 보다 면밀히 확인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향후 FI와 적격상장 가격, 차액보전 약정 등을 맺은 기업들은 공모 구조 설계 과정에서 이 같은 계약 조건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존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 보장을 전제로 한 계약이 수요예측 이후 상장 철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당국이 관련 내용을 더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며 "특히 대형 딜이 철회할 경우 공모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관련 계약에 대한 점검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