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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테크닉스가 9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나서며 다시 한 번 삼성 공급망을 겨냥한 반도체 베팅에 나섰다. 삼성전자향 매출 비중이 높은 비메모리 프로브카드 업체 윌테크놀러지를 인수하기 위해서다.
과거 LED·태양광·무선충전·ESS 등 삼성 연계 신사업마다 증자를 반복해온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딜 역시 '또 한 번의 삼성 베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솔테크닉스는 최근 최대주주 한솔홀딩스를 대상으로 한 450억6200만원 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와 450억750만원 규모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동시에 결의했다. 총 조달 규모는 약 900억원이다.
주주배정 유증 예정 발행가액은 3625원, 발행 주식 수는 1241만4000주다. 기존 발행주식총수 3178만9878주 대비 증자비율은 39.05%에 달한다. 여기에 한솔홀딩스 대상 제3자배정 물량 921만2000주까지 더하면 전체 발행주식 수는 5300만주 수준까지 늘어난다. 할인율은 20%다. 기존 주주 입장에선 적지 않은 희석 부담이다.
시장은 이번 유증을 단순 희석 악재보다 반도체 중심 체질개선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한솔테크닉스는 유증 공시 당일 상한가를 기록했고, 다음 거래일에도 13% 넘게 오르며 15일 기준 7500원대를 유지 중이다. 비슷한 시기 기존 발행주식의 40% 안팎 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한화솔루션이 자금 상당 부분을 채무상환에 쓰며 '빚 갚는 유증' 이미지로 주가가 급락했던 것과 대비된다.
이번 인수 대상인 윌테크놀러지는 비메모리 반도체 검사 핵심 부품인 프로브카드를 생산하는 업체로, 삼성전자의 핵심 협력사 중 하나로 알려졌다. 한솔테크닉스는 총 1772억원을 투입해 윌테크놀러지 지분 83.37%를 확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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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회사는 이번 거래를 단순 인수가 아닌 반도체 중심 사업재편의 연장선으로 설명한다. 2022년 아이원스 인수에 이어 반도체 EDS(Electrical Die Sorting) 공정 내 밸류체인을 확대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한솔테크닉스는 기존 아이원스의 정밀가공·코팅 기술과 윌테크놀러지의 프로브카드 기술 간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한솔테크닉스의 삼성 연계 유상증자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솔테크닉스는 삼성전자 TV용 백라이트유닛(BLU) 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삼성전자 생산기지 이전과 사업 구조 변화에 따라 주력 사업이 흔들리자 신사업 확대에 나서왔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삼성 계열과 연계 가능한 사업들이 투자 명분으로 제시됐다.
실제 회사는 2010년 405억원, 2012년 505억원, 2013년 537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LED·태양광·무선충전 사업에 투자했다. 2014년 유상증자 당시에도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설비 201억원, 솔라모듈 시설 98억원, Sub-PBA(인쇄회로조립체) 시설 141억원 등 총 670억원 규모 자금 사용 계획을 제시하며 삼성SDI와의 ESS 협업 가능성이 거론됐다. 이후 2019년 유상증자는 만기 회사채 상환에 사용되며 재무구조 방어 목적 성격이 짙었다.
다만 과거 신사업 상당수는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LED 시장 개화 지연, 태양광 업황 악화, 무선충전 사업 지연 등이 겹치며 상당수 투자가 계획 대비 축소되거나 방향이 바뀌었다. 회사도 과거 LED·태양광 투자가 삼성의 신수종 사업 선정에 따른 동반 투자 성격이었으나, 전방 산업 업황 부진으로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자금조달은 과거처럼 성과가 검증되지 않은 신사업에 선행 투자하는 구조가 아니라, 이미 삼성전자 공급망에 편입돼 실적을 내고 있는 반도체 부품사를 인수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한솔테크닉스 역시 현재 삼성전자에 프로브카드를 공급 중이라고 밝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에도 삼성 관련 성장 스토리를 앞세운 유상증자가 반복됐던 만큼 이번 딜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보긴 어렵다"면서도 "다만 이번에는 검증된 삼성전자 공급망 내 반도체 부품사를 인수하는 구조인 만큼, 하반기 연결 실적에 윌테크놀러지 성과가 얼마나 반영되느냐가 이번 베팅의 평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