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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상반기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주요 기관투자가들의 온도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대한지방행정공제회(이하 행공)와 MG새마을금고 등 이른바 시장의 '큰손'들은 사실상 관망 모드에 들어간 반면, 국민연금공단은 블라인드펀드 집행과 대규모 신규 출자 공고를 앞세워 오히려 국내 부동산 투자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상반기 기관 자금이 빠진 자리를 국민연금이 메우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 상호금융권이 적어도 상반기 중에는 공격적인 신규 투자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거래 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데다, 자금 사정과 내부 통제 기조까지 겹치면서 과거처럼 블라인드펀드를 앞세워 과감하게 자금을 집행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곳이 행정공제회다. 행공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부동산 투자에 대한 보수적 기조를 한층 강화해 왔다. 올해부터는 국내부동산팀과 자산관리팀을 통합하는 등 투자 조직 개편 방향까지 부동산 축소에 맞춰졌다.
이 같은 기조 변화는 실제 거래 현장에서도 감지된다. 최근 코람코자산신탁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강남358타워 거래에선 당초 행정공제회 블라인드 자금이 대량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캐피탈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구조를 다시 짜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대부분은 별도의 투자 재원을 활용하기로 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블라인드에서 과감하게 자금을 태웠겠지만 지금은 출자자 통제가 강해지면서 집행이 쉽지 않다"며 "행공은 사실상 신규 에쿼티 투자보다는 관리와 안정성 확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MG새마을금고 상황은 더 보수적이다. 새마을금고는 최근 예금 이탈과 수익성 부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정리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부터 PF 관련 부실자산 정리를 핵심 과제로 삼고 매각과 경·공매, 부실채권 처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에 따라 신규 대출 영업에도 사실상 제동이 걸린 상태다. 예대마진 구조가 흔들리면서 신규 자금을 대체투자에 여유 있게 배분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새마을금고중앙회가 대체투자 자산 전반에 대한 공정가치 재평가 체계 구축에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정기 점검 중심이던 체계를 수시 평가 체계로 바꾸고, 손상차손 인식이나 기한이익상실(EOD), 이자·배당 중단, 만기 연장, 공사 지연 등 부실 징후를 보다 이른 단계에서 포착하겠다는 취지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MG는 예금이 빠져나가고 예대마진도 맞지 않으면서 신규 딜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내부적으로는 적어도 6월까지는 아무 딜도 하지 말고 '홀드'하자는 기류를 전해왔고, 올해 블라인드펀드 출자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국내 부동산 위탁운용사 선정 계획을 공고하면서 오퍼튜니스틱 펀드와 논코어 대출 펀드에 각각 최대 6000억원씩, 총 1조2000억원을 출자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단순한 연례 출자 공고가 아니라 국내 부동산 시장에 다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적극성은 공고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KB자산운용은 서울 영등포구 오피스 '세미콜론 문래'를 수의계약 방식으로 인수하려 추진하고 있다. 해당 거래는 국민연금이 앵커 출자자로 참여한 블라인드펀드를 통해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안 매각이 지연되던 자산이 거래 국면으로 전환된 배경에 국민연금 자금이 작용하는 상황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최근 국민연금이 대형 운용사뿐 아니라 중소형 운용사에도 블라인드 자금을 배분하면서 시장의 거래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과거에는 검증된 대형 하우스 위주로 자금이 흐르며 자산 선점 경쟁도 제한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중소형 운용사들도 국민연금 블라인드 자금을 배경으로 적극적으로 딜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시장은 부동산 투자 확대보다 리스크 관리와 자산 정리에 무게를 두는 기관들과, 오히려 그 빈자리를 메우며 적극적으로 집행에 나서는 국민연금으로 뚜렷이 갈라지고 있다.
앞선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상반기만 놓고 보면 다른 앵커들은 멈췄고 국민연금만 움직인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예전에는 여러 기관이 나눠 들어가던 딜도 이제는 국민연금 계열 자금이 붙느냐 아니냐가 거래 성사 여부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