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업무 부동산 처분" 발언에 들썩인 재계…포스코·KT 먼저 움직인다
입력 2026.04.24 07:00

재계 주말 비상회의…"정관부터 다시 들여다보자"
공장 부지·사택도 대상?…기업들 "경계가 없다"
포스코·KT는 이미 선제 대응…자산 매각 속도전
삼성·LG 관망, SK·한화는 회색지대 부담 커
"세금보다 기준"…기업 자산 전략 재편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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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기업 보유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해 "대대적인 보유 부담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재계가 즉각 반응했다. 정책 세부안이 나오기도 전에 주요 대기업들은 주말 내내 비상회의를 열고 자산 점검에 착수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세율 인상 문제가 아니라 기업 자산 전략 전반을 흔들 수 있는 변수로 보고 있다. 특히 무엇을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기업 안팎에서는 "세금보다 기준이 더 무섭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통령 발언 직후 주요 그룹 계열사들은 일제히 긴급 대응에 들어갔다. 일부 대기업은 주말 동안 임원급 회의를 열고 보유 부동산 리스트를 전수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세율이 아니라 '정관'이었다. 상당수 기업이 부동산 임대업이나 리츠(REITs) 관련 사업 목적을 정관에 명시해 두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면서 내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부분 대기업은 정관에 부동산 관련 사업을 넣어뒀지만 절반 정도는 그렇지 않은 상태"라며 "정관에 없으면 보유 자산이 비업무용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어 대응이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가장 크게 혼란을 느끼는 지점은 '비업무용'의 범위다. 단순 투자용 부동산이 아니라 실제 경영 과정에서 발생한 자산까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래 사업을 위해 선제적으로 확보한 공장 부지다. 인허가 지연이나 경기 상황으로 인해 일정 기간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경우 해당 토지가 비업무용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직원 사택이나 일부 층만 사용하는 사옥도 마찬가지다. 한 건물에서 일부는 본사가 사용하고 나머지는 임대하는 구조라면 전체를 비업무용으로 볼 것인지, 일부만 해당하는지에 따라 과세 부담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앞선 재계 관계자는 "IT기업이나 금융계열사들은 건물 일부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임대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이를 전부 투자부동산으로 본다면 사실상 대부분 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일부 기업은 이미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KT와 포스코그룹이다. 양사 모두 보유 부동산 규모가 크고 일부 자산이 투자 성격으로 분류되는 만큼 정책 영향이 직접적으로 미칠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꼽힌다.

    KT는 전국에 분포한 사옥과 유휴 부지를 기반으로 상당한 규모의 투자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신라스테이 역삼, 안다즈 서울 강남 등 호텔 자산은 본업과의 연관성이 낮아 대표적인 비핵심 자산으로 분류된다. KT는 이들 자산 매각을 검토해왔으나 아직 본격적인 처분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최근 실적에서도 부동산 개발 및 분양 이익 비중이 적지 않은 만큼, 보유세 강화 시 현금창출원 역할을 해온 부동산이 부담 요인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KT가 일부 자산 매각이나 구조 재편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포스코그룹 역시 구조개편 과정에서 비핵심 자산 매각을 진행해온 만큼 이번 정책과 맞물려 추가적인 자산 정리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인천 송도의 잭니클라우스GC는 올해 초부터 매각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포항·광양 일대 유휴 부지 역시 공장 이전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자산으로, 향후 규제 적용 범위에 따라 선별 매각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KT나 포스코는 이미 자산 매각이나 재편을 검토해온 상황이라 정책 신호에 더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라며 "다른 기업들도 상황을 보면서 유사한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룹별로 체감하는 영향은 크게 엇갈린다. 삼성과 LG그룹 등은 제조·연구개발 중심의 자산 구조를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타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 자산이 공장, 연구소, 본사 사옥 등 명확한 업무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 역시 기준 확대 가능성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 임대 자산이나 유휴 부지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경우 영향 범위가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SK와 한화그룹 등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투자, 유통, 에너지, 금융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구조상 부동산 자산의 성격이 혼합돼 있어 업무용과 비업무용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모호한 까닭이다. 

    그중에서도 데이터센터 부지, 물류시설, 상업시설, 개발 예정 부지 등은 사업과 직접 연결돼 있으면서 일정 기간 유휴 상태로 남는 경우가 많아 향후 규제 적용 여부에 따라 부담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 정책이 단순한 세제 개편을 넘어 기업의 자산 운용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보유세 부담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질 경우 기업들은 비핵심 부동산을 매각해 현금화하고 이를 신사업 투자로 전환할 유인이 커진다.

    실제로 포스코와 KT 내부에서는 매각 자금을 인공지능(AI)이나 로보틱스 등 미래 사업에 재투자하는 방안이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세금이 문제가 아니라 유휴 자산이 어떻게 분류될지가 더 큰 문제"라며 "기준이 정해지는 순간 기업들의 자산 재편 움직임도 본격화돼 딜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