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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등급을 유지하던 제이알글로벌리츠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이면서 국내 신용평가사의 평가 시스템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시장이 '안전 자산'으로 인식하던 투자적격등급 상단에서 부실이 현실화한 것은 2013년 웅진, STX, 동양 사태 이후 약 13년 만이다. 당시에도 "신용평가가 지나치게 후행적이었다"는 비판이 거셌는데, 이번에는 해외 자산 실사와 리츠 평가 방법론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의 유효등급은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두 곳이 보유하고 있다. 지난 28일 한신평과 한기평은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무보증사채, 전자단기사채 신용등급을 가장 낮은 'D'로 일괄 강등했다.
한신평은 올해 3월 초까지도 'A-(안정적)'을 유지하다 보유 자산 가치 하락과 환정산금 부담, 높은 시장성 차입 비중 등을 이유로 '부정적'으로 등급 전망만 낮췄다. 이후 지난 16일 벨기에 오피스 자산의 감정평가 결과 자금동결(캐시트랩)이 발생했고, 20일에야 'BBB+(하향 검토)'로 추가 조정됐다. 회생절차 신청 직후에는 'C'등급으로 낮췄고, 법원의 재산보전처분명령 및 포괄적 금지명령 결정 이후 최종적으로 'D'등급을 부여했다.
한기평의 경우 지난 17일 신용등급은 'A-'로 유지하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이후 24일 'BBB+(부정적 검토)'로 조정한 뒤, 28일 'BB+'에서 곧바로 'D'등급으로 강등했다. 결과적으로 D등급 부여는 한기평이 먼저였지만, 등급 하향 자체는 한신평이 더 빨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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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이지연)
가장 최근 회생 절차가 이뤄졌던 홈플러스와 워크아웃 중인 태영건설 역시 신용등급 하락 과정에서 신평사들의 일정한 경고 신호가 있었다. 태영건설의 경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리스크가 사전에 일부 노출됐다. 신평사들 역시 자기자본 대비 PF 비율이 타 건설사 대비 높은 편이며, 우발채무 리스크가 높다고 경고해왔다. 홈플러스의 경우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로 인수된 이후 장기간 단계적 등급 하락이 이뤄졌다. 이후 'BBB' 수준에서 회생 신청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사례는 투자적격등급 상단에서 급격히 신용위험이 현실화됐다. BBB까지 하락한 뒤 무너진 것과 A등급 상태에서 사실상 부실이 드러난 것은 시장 신뢰 측면에서 무게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A등급에서 부도가 난 게 13년만으로 이례적인 경우"라며 "신평사들의 평판이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지난 27일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고, 만기도래를 앞둔 전단채 4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이뤄졌다. 벨기에 오피스 자산에 대한 대주단의 담보가치 감정평가액 하락으로 인해 현지차입금 차환가능성이 낮아지면서다.
시장에서는 해외 자산에 대한 신평사의 실사 능력과 부여 등급 사이의 괴리를 지적했다. 겉으로는 부동산 가치로 인해 자산 안정성이 높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현지 대주단이 담보권과 현금흐름 통제권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다는 이유다.
특히 벨기에 오피스 시장 침체와 자산 가치 하락, 현지 금융기관의 대출 조건 강화는 이미 상당 기간 관측됐던 변수였다. 그럼에도 A-등급이 유지됐다는 점에서 해외 자산에 대한 정성적 판단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들은 암묵적인 담보력을 믿고 투자한 셈"이라며 "신평사도 자산가치 자체에 무게를 두고 등급을 부여했지, 해외 대주단과의 계약 구조나 현금흐름 통제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NICE(나이스)신용평가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유효등급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당시 벨기에, 미국 등 해외 자산에 대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내부 판단하에 등급 부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평사들의 부도 인식 기준 차이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부도기업이 회생절차를 신청했을 때 한기평과 NICE신평은 즉시 D등급으로 조정하는 반면, 한국신용평가는 신청 단계에서는 C등급을 부여하고 법원의 개시 결정 이후 D등급으로 내린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책적 차이일 뿐 시장 체감상 의미는 크지 않다"고 했다.